냉소적 말투만 삼가해도, 영혼이 생기를 얻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기대감이 없는 것은 냉소주의의 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깊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서, ‘다 그렇지 뭐’ 하면서 비아냥거림과 조소 섞인 태도가 내면에 굳어져 말을 쏟아놓는 것은,  체념적 방어기제이며 다른 사람에게 냉소적 말투를 남발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비롯됩니다. 때때로 냉소주의는 지혜로 가장하지만, 사실은 지혜와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자기중심의 교만과 오만한 죄로 가득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데, 냉소적인 말은 절망을 미화하고 모두 부정적입니다. 거절과 거부로 인한 상처의 경험이 많을수록 냉소적 사고에 붙잡힐 수 있습니다.

냉소주의는 아무런 설렘 없이 차가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쉬운 말로 표현하면, ‘모든 것을 다 시도해 보았는데, 해 봐도 별 볼 일 없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봉사해 보았는데 별로 득이 되는 것이 없고, 인정해 주는 사람도 별로 없고, 더 이상 인정받는 것도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나를 위해 살아야 하겠다는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진 상태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부정적으로 속단하는 것인데, 설령 그렇다해도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가 있어도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고, 보상해 주시는 분이시고, 복 주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무슨 일을 하든지 기쁨과 감사함을 의지적으로 표현하고 가능성을 믿어야 냉소적인 사고가 물러갑니다.

해 보고 안 되면 또 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의지와 힘과 지혜는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믿고, 냉소적 사고를 벗어나야 합니다. 어떤 아픔의 과거의 사연이 있다 할지라도 과거 사연에서 자신을 풀어놓고, 그렇게 되어서 좋은 점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고, 과거의 실패의식에 붙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은,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요11:44)고 하셨습니다. 절대절망에서 가능성을 선포한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과 과거로부터 풀어 주심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자포자기의 냉소적 사고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냉소적인 말을 물리치려면, 기도의 자리에서 주님 앞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성스러운 목표를 세우고, 선한 일을 하는 목표를 세우고, 영혼을 구원하는 목표를 세우고, 아름다운 만남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순종과 책임으로 거룩한 기쁨을 누리겠다는 선포와 고백과 간구를 해야 합니다. “안 된다. 못한 다. 힘들다. 피곤하다. 해봐도 별 수 없다”. 이런 말들은 모두 마귀를 기쁘게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시고, 그분이 우리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십니다. 성령님은 언제나 “할 수 있다. 된다. 강건하다. 즐겁고 행복하다”는 말을 좋아하십니다. 

이 시대는 말이 마려워 견디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오염된 말투가 심각합니다. 신뢰를 파괴하고, 무력감을 유발시키고, 부정성을 전염시킵니다. 하지만 성도는 기도를 시작하면 힘든 상황이든, 어려운 문제이든 흥분이 가라앉게 되고 사랑과 신뢰의 말로 마무리가 됩니다. 신기하게도 그때 성령께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편함이 쉽게 해결 되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하면 박수를 쳐 주고 못하면 더 박수를 쳐 주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삶은 말대로 됩니다. 냉소적인 말투는 영혼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매일 기도의 자리에서 유해하고 진부하고 구부러진 말을 제어하고, 덕을 세우는 긍정의 말을  훈련하십시다. (장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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