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변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무리 변화되려고 노력해도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중독된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신기하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사람은 한 순간에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변하지 않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잔소리하고 닦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다고 해서 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교회생활을 했으면서도 삶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설교의 내용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수동적으로 설교를 듣기 때문에 은혜를 못 받는 것입니다. 자신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설교자가 자신을 감동시켜서 변화시켜 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에 의해 예상치 못한 은혜를 체험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흔치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매주 설교에 은혜를 받으려면, 자신이 적극적으로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예배에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날 설교자를 통하여 자신에게 말씀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탁월한 설교자라고 해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교자가 인격적인 하자가 있다할지라도 강단 위에 서서 설교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대변자입니다. 칼빈은 설교자의 입을 주저함 없이 ‘하나님의 입’이라고 했는데, 설교자가 강단에 섰을 때, 하나님 자신이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구약 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면,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셨는데, 신약 시대에는 성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면 설교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하나님의 스피커입니다. 물론 스피커의 성능에 따라서 맑은 소리가 나기도하고, 듣기 불편한 소리가 나기도 하지만 말씀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설교자의 인격과 그의 메시지를 혼동하면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주님이 설교자를 통하여 예배 가운데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면,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취해야 할 태도는 ‘이것이 오늘 저에게 주시는 말씀입니까?’, ‘이것이 저를 위한 메시지입니까?’라며 설교 대지가 바뀔 때마다 반복해서 질문하면서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설교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음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하나님 오늘 저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하나 고른다면 어떤 것이 되겠습니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활에 적용할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그 말씀을 기도제목으로 삼고, 한번 이상 삶에 적용해 보아야 합니다. 그때 마음이 바뀌고 행동이 변화된다면, 반드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사람은 자기 약점을 어느 정도 압니다. 그 약점을 넘어설 수 없는 한계 또한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으로 개입하시면, 어렵지 않게 그 약점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면서 그것을 버리려고 해도 버리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버리게 하시니까(사30:20-22) 쉽게 버리듯이, 삶을 변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 설교를 들을 때, ‘아멘’으로 응답하면 말씀에 집중할 수가 있고, 말씀을 듣는 적극적인 마음 자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안하다가 소리 내어 ‘아멘!’ 하면 쑥스러울 수 있지만, 입으로 소리를 내고 고백하다보면 설교자와 영적교감을 갖게 되고, 말씀이 영혼에 접속되어 성령께서 순종하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매주 설교 말씀에서 자신을 위한 말씀을 하나씩 건진다면, 삶이 변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 삶이 변할 때, 그때를 우리는 은혜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장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