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linkedin
Share on whatsapp

개혁교회의 특성

모든 그리스도인은 말할 때 ‘액센트’(accent)가 있다. 즉 신학적인 강조점을 가지고 말을 한다. 실제로 “액센트”가 전혀 없는 그리스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뉴올리언스, 핼리팩스, 브루클린, 그리고 위니펙 사람들에게 어떤 단어를 말하게 해본다고 하자. 같은 발음을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것은 그들이 서로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언어는 그 본질상 지역에 따라 발전하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표현하는 특정한 방법을 발전시키며, “문화”는 공동의 경험, 의미, 그리고 삶의 방법 등을 포함한 이러한 특성들이 쌓인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각 공동체의 개성은 하나님의 창조 속에 존재하는 놀라운 다양성의 단면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함께 일하고 예배드리는 동안 각각 특별하게 말하는 방법을 발전시킨다. 따라서 순전하고 신학적으로 중립적인 기독교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통의 믿음과 삶의 경험을 공유한 특정한 사람들은 성경을 이해하고, 그들의 믿음을 표현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방법을 개발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차이점이 서로의 마찰과 소외를 가져온다면 그때는 건전한 차이점이 결국 죄악된 분열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어쩔수 없이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각각 독특한 신학적인 액센트를 가지고 말하게 된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매우 성경적이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나타난 몸으로서의 교회의 이미지는 교회의 단일성(한 몸)과 다양성(손, 발, 눈)을 동시에 강조한다. 이 위대한 본문의 가르침은 명확하다. 즉 성경적으로 건전한 교회는 깊은 일체감과 함께 풍성한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심오한 성경의 가르침 중 하나는 ‘하나와 여럿’의 진리이다. 삼위일체의 하나님 그 자신도 하나이면서 셋이신 것을 보라.

그러므로 개혁교회의 신자 또는 다른 그룹의 기독교인이 그 자신의 신학적 특성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려는 것은 그 자체가 죄악된 것이나 분열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자기 이해는 몸 중에서 손이나 발 또는 눈을 강화시킴으로써 세상을 향해 연합된 몸 전체를 강화시킨다.

때때로 사람들은 일부 소수의 사람이 자기 식으로 강조해서 말한 것을 가지고 개혁주의나 엄밀한 개혁주의로 잘못 소개하고, 또는 개혁교회는 전세계 기독교회와는 연관이 별로 없는 것같이 말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개혁주의의 강조점은 북미주 개혁교회나 특별한 개혁교회의 역사보다 훨씬 넓다. 개혁주의는 헝가리, 한국,

인도네시아, 스코틀랜드, 그리고 마다가스카르 등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성하고 있으며,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들 중 하나에 불과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전세계 30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더욱이 CRC 자체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어서, 일요일에 북미주의 CRC 교회는 적어도 14개의 다른 언어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뿐 아니라, 개혁주의 기독교는 전세계의 교회와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개혁주의 기독교는 신약시대의 교회로부터 시작된 더 폭 넓은 기독교 정통주의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다. 개혁주의 신자들은 모든 다른 신자들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신 삼위 하나님과, 그 중 제 2위께서 나사렛 예수로 성육신하셨음과, 제 3 위께서 성령으로 교회에 내주하심을 믿는 신앙을 공유한다. 개혁교회 신자들은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과 이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사명, 그리고 영광 가운데 재림하실 그리스도께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끄실 것을 인정한다. 개혁교회 신자들은 온세계의 교회와 함께 사도신경으로 그들의 동일한 신앙을 고백한다.

레이아웃 구독

최근 인기

더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