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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관계보다 감정을 받아 줄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어떤 행동이나 사고의 사실관계가 옳고 틀림의 문제로 결론 되어질 것이라고 미리 예단합니다. 그래서 틀린 것을 빨리 지적해 주고 고쳐 주려고 합니다. 답을 안다는 이유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둘러 가르쳐서 바로잡아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옳은 것이 끝까지 옳음으로, 틀림이 끝까지 틀림으로 끝나는 경우보다, 중간에 감정에 의해 수정과 교정을 통해 마지막 결론이 뒤바뀔 수 있습니다. 사람은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더 정서적이고 입체적이고 복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면,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대화하면서 ‘이게 아니다’ 틀렸다 싶으면 재빨리 틀린 이유를 지적해 주기보다 먼저 정서적으로 무조건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가 자기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잘잘못을 따져 교정하려고 할 때 오히려 마음에 방어벽을 세우고 더 이상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일단 자기에 대해 안심해야 그 다음에 대해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할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듣기 전에 따끔한 쓴 소리 혹은 충고는 공감의 부재로 오히려 부작용으로 말문을 닫게 하는 것입니다.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하고 있을 때, ‘너 틀렸다’고 하지 말고 ‘너 옳다’라고 지지해 주면 금방 자만심에 빠져 어리석은 일을 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 자기존재에 대해 안심하며 마음에 조금씩 여백을 내보입니다.

사람은 안도감이 있은 후에야 다음 행보를 어떻게 할지 쉽게 결정합니다. 예를 들면, “이제 지쳤다.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싶다. 일 그만 두고 싶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할 때 “야! 네가 그러면 되느냐, 그러면 안 되지”라는 말을 하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때는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말이니, 사실관계를 떠나 틀려도 ‘네가 옳다’는 반응과 공감을 해 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대하는 예의이며, 제대로 듣는 순서입니다. 그 부정적 감정이나 피곤한 입장에 대한 수용을 해 주면, 과격한 자기주장을 내려놓고 조언에 귀 기울이고 교정하게 됩니다.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정파악이 핵심 관건입니다. 누구나 복잡하고 과도한 자기 드러내기를 하고 싶은데 관심과 주목받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차단이나 방어하면 그 사람 안에 분노나 억울함이 상처로 곪게 됩니다.

‘죽고 싶다’고 해도 실제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살고 싶은데, 죽고 싶은 그 사정과 형편을 좀 알아 달라는 마음을 전하는데 막무가내로 옳고 틀렸음을 지적하면 더 이상 진실한 감정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가 희미해 질수록 존재 증명을 위해 몸부림치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감정을 받아 줄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그 힘은 미리 저축하는 기도에서 나옵니다. 이번 주도 우리 목장 모임 가운데 성령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장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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