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의 답으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고 존엄성을 갖게 됩니다. 이 존엄성이 긍정적이면, 어떤 처지와 형편에도 자기존중감이 건강한 삶을 살게 됩니다.자기존중감이 건강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가 나를 거부하는 뉘앙스를 풍길 때 채워지지 않은 인정욕구에 대한 불만으로 억울함과 분노 감정이 내재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느 한 순간 관계에 있어서 거리를 두는 것이 느껴질 때, 굴욕당하고 무시당하는 느낌 때문에, 충분히 뭔가를 이루어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어떤 일을 했으니, 당연히 공로에 대한 인정과 칭찬을 받아야 하는데, ‘아! 그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라며, 무시당하면 존엄성에 대한 타격을 받고, 관대함이 사라지고 옹졸 해지고 냉소적인 태도를 표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할 수 있지만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에서 상대방의 노고를 인정함으로써 관계는 더욱더 풍부해지고 깊어집니다. 그 이유는 인정이 존중이기 때문입니다. 존중을 받는 것이 느껴지면, 하기 어려운 일도 하고 싶은 열정이 생기고, 그 일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고, 선한 결과의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게 됩니다. 그래서 칭찬으로 인정 욕구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인정욕구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며, 성장과정 중에 어린 시절에는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인정 욕구는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자기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과 자부심을 갖게 하며, 삶의 목표를 달성시키는 성장 기제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인정과 존중을 받게 되면, 자신감과 안정감을 갖게 됩니다.
경멸은 인정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존중과 인정의 부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애씀의 수고를 무시하겠다는 의지를 암묵적으로 표출하고, 더 많은 헌신을 강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거부 의사를 확고히 하는 태도가 경멸입니다. 그 태도 뒤에 숨겨진 것은 무시이고, 교만한 자아의 횡포입니다.
인정욕구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도 인정욕구가 있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순히 이용당하는 존재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를 미워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만 인정받으면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아야 그 격려로 의무감이 아닌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가?’ 이 세 가지 질문으로 끝내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시는가?’ 하고 네 번째 질문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변함없이’ 입니다. 이 음성이 들릴 때, 내가 나를 스스로 치료하는 주치의가 될 수 있습니다.(장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