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조심해야 해요.’, ‘그 사람과 함께 일하지 마세요.’, ‘내 말 듣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입니다.’ 주변에서 종종 듣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말을 하겠지만, 그렇게 주의하라고 한 그 나쁜 사람이 내게도 자동으로 나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세상 논리입니다.
물론 이유 없이 그가 나에게 나쁜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나쁜 행실로 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관계가 비틀어지거나 깨어진 경우가 있고,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어떤 원인제공을 그 사람 본인이 했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에 공감해야 합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다고(롬3;10)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볼 때, 선악과 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항상 ‘옳고 그름’, ‘내 편, 네 편’, ‘좋은 것, 나쁜 것’으로 분리하고, 내가 기준이 되면 나 뿐인 사람으로 그 사람보다 내가 더 나쁜 사람이 됩니다.
율법적인 시선은 항상 분리시키는 사고로 선악과 인생을 살기 때문에, 자기가 잘못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해 놓고, 그가 자신에게 나쁜 사람이 된 것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나쁜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규정하는 것은 사실이 아닌 자기 착각일 수 있습니다.
율법적인 시선은 항상 그 사람 안에 숨겨진 죄나 나쁜 성향의 쓴 뿌리를 캐내서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복음적 시선은 그 사람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영광을 캐내는 눈입니다.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눈의 열린 상태가 복음적 사고로 영적으로 건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야 칭찬하고 격려하고 더 좋은 사람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복음적 시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고, 율법적 시선은, ‘그러니까 그렇지’ 입니다. 율법적인 시선은 그 사람 안에, 숨겨진 죄의 쓴 뿌리를 계속 캐내는 것입니다. 일단 ‘그 사람은 나쁘다.’ 하고 그 사람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히면,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사탄이 그렇게 합니다. 하는 말이나, 하는 행동 모두가 다 나쁘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너에게 좋은 그 사람이 나에게도 좋은 사람일까?’ 물론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나에게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유는 내가 그 좋은 사람을 쉽게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나쁜 사람이 되면,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도 순식간에 나에게 나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나에게 ‘그 사람 나쁜 사람이니 조심해요.’라고 말하는 그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유는 그 사람을 섬김으로, 경건한 삶을 위한 주님의 부르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의 연약함을 품지 못하고, 그 사람을 이용가치, 사용가치로만 본 사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라고 점 찍어 놓은 그 사람 속에 복음을 심는 것이 우리의 사명 그리스도인의 책임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그 사람 조심해야 해요.’ ‘그 사람 나쁜 사람이니 함께 일하지 마세요.’ 하고 말하면, 그 즉시 그 사람에게 더 잘해 주고, 잘 섬겨서, 그 사람 속에 숨겨 놓은 하나님의 형상, 영광을 보는 믿음의 눈이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장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