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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감정보다 결심에 근거해야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항상 사랑스럽지 않듯이, 나도 다른 사람에게 항상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는 좋든 나쁘든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수일 전에 나를 실망시킨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의 간절한 기도를 응답해 주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사랑하는 것은 감정을 수반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성경은 감정을 근거로 사랑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한 정의는 좋은 감정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만약 사랑이 좋은 감정에서만 시작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실망시키고,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바라는 모습이 되기를 거부하고, 혹은 그가 나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면 조금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귀가 수시로 사랑의 정의를 ‘감정’ 으로만 왜곡하기 때문에, 싫은 사람과 미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여기게 하는데, 함께 삶을 나누고 싶지 않을 때도 의지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사랑입니다.

피상적인 공손함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령님 덕분에 사랑하기 싫은 사람을 사랑할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교만이나 이기심에 빠지는 일 없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혼자일 때 마귀는 우리의 생각을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없어서가 아니고, 내 안에 죄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든 것을 모르도록 속입니다. 그래서 관계 맺음을 포기하게 하고 자기 홀로 고립되게 부추깁니다.

우리는 교회가 완벽하기를 바랍니다. 좋은 사람만 있기를 바라고 서로 잘 지내기를 바라고, 줄곧 잘 대해주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나도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고, 나를 실망시키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용서와 사랑을 배우고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가족입니다. 가족은 완벽과 거리가 멉니다. 정죄는 가족이 하는 일이 아니고, 오직 격려와 기도로 사랑해 주는 것이 교회입니다. 실망할 일들이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용서로 구속함 받은 불완전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 누구도 스스로 혼자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나쁜 사람’의 어원은 ‘나뿐이야’에서 나왔습니다. 항상 나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나쁜 사람의 특징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면 주님께서 사랑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걸 아는 마귀는 사랑하지 못하게 감정을 자극합니다.

성숙해지며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불완전한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소명은 다른 사람들과 삶을 나누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다. 사랑은 감정보다 결심에 근거해야 합니다. (장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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