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linkedin
Share on whatsapp

기도는 죄의 능력과 싸우는 영혼의 직접적인 투쟁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마음에 영접하고 거듭난 신자에게도 죄는 내재합니다. 그러나 그 죄가 어떠한 실재인지 잘 구별할 수 없는 것은 분별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막연히 죄책감을 느끼면 사탄이 공격하는 정죄감에 시달리게 되어 신앙이 정체되고 퇴보됨으로 분별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악한 상상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상당수의 사탄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영혼에 죄가 지배하지 않은 경우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갑작스런 유혹이 일어나도 죄가 지배한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악한 상상은 마음을 눈 멀게 하고 본연의 의무를 생각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유혹의 총체적인 능력은 악한 상상을 통해 확대되는 데 있습니다. 언제나 유혹에는 많은 위선과 속임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 그러한 유혹의 상상을 엄정하게 검사하고 통제한다면, 마음을 지킬 수 있고 옛사람의 소욕을 근절시킬 수 있습니다.

악한 상상과 생각들로 말미암아 심한 고통이 있어도 죄가 지배한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사실 죄는 비자발적인 움직임도 아니며, 단지 죄의 성향이나 기질 자체도 아닙니다. 다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상상으로 말미암아 정서가 작용하여 죄가 실행으로 이어질 때 죄가 됩니다. 이때 영혼이 그 상태를 감지하여 올무에 빠져들지 않도록 노력하고, 악한 생각들의 정체를 대적하기 위해 기도하면 정결함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악한 생각이 사탄에 의해 즉각적으로 나타나도 죄가 지배한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종종 악한 생각들이 사탄의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주입으로 인해 생겨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그 상태를 가만히 두어 더럽고 추잡한 상상이 쾌락과 정욕으로 실행에 옮길 때 죄에 빠지게 되는데, 대부분의 성도들이 죄와 사탄의 지배 아래 있다고 결론을 성급히 내리고 포기하는데, 분별하고 판별이 된다면 정서 내에 존재하는 죄가 반드시 죄의 지배에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강한 부패성과 정서의 무질서를 통찰하고 경계하면, 오히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죄 죽임의 노력이 신실하다면, 죄는 결코 그 성도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죄를 향한 강한 기질적 성향 속에서 죄의 경향성과 게으름을 자각하고 은혜와 의무들을 부지런히 적용할 때 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죄 죽임을 위해 진지하게 해야 할 실천은, 나의 죄 죽임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인정해야 하고, 그 십자가에서 나는 못 박혀 죽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더러운 상상 악한 생각이 소멸되고 거룩한 애통함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죄 죽임을 위해 끊임없이 진지하게 해야 할 실천은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는 우리가 죄를 죽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제정해 주신 위대한 수단입니다. 죄를 품고는 성결한 마음으로 주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죄를 이겨 내도록 영적인 도우심과 힘을 제공받게 됩니다. 기도는 죄에 대항하는 마음의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성도라고 할지라도 기도의 의무에 태만해지고, 기도를 싫증내면, 죄의 세력에 압도적으로 장악 당하지만, 진지하게 기도하면 마음과 영혼이 성령 안에서 선함이 보존됩니다. 위의 내용은 존 오웬의 ‘죄와 은혜의 지배’를 쉽게 해석한 것입니다. (장목사 드림)

레이아웃 구독

최근 인기

더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