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글 말의 조사 “은”과 “이”는 차이점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상에서 매일 사용하는 말 중에, 이 두 개의 조사를 섞어서 씁니다. 비슷하게 느끼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념은 분명히 다릅니다. 누가 ‘꽃이 피었다’고 할 때와 ‘꽃은 피었다’고 할 때, 이 문장의 “은”과 “이”의 차이점이 없는 것 같지만 개념은 다르고, 표현의 명료성이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은 ˂꽃이 피었다˃ 와 ˂꽃은 피었다˃의 두 문장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것은,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그러나 ˂꽃은 피었다˃는 말은,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자기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입니다. 결국 ˂꽃이 피었다˃는 말은, 사실 세계를 토대로 한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말은 자기의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예를 들어 ˂하늘은 흐리다˃와 ˂하늘이 흐리다˃의 차이를 설명하려면, ˂하늘은 흐리다˃라는 말은 나의 마음에서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따라 하늘이 약간의 명도 차이가 생겨 날 수 있는 정서의 세계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이 흐리다˃의 말은, 극히 물리적인 현상적 사실, 누가 봐도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상태를 진술하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말에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내 중심의 주관적 언어에 능숙합니다. 내가 보기에 느끼는 감정을 사실화하고, 객관화 혹은 일반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에 특히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과, 환경에 대한 입장표명은 거의 나의 주관적 생각이 앞섭니다.
저는 [이]와 [은]의 조사에 대한 뜻은 알고 있었지만, 분명하게 표현하고 설명하기가 명료하지 못해 어떤 때는 표현하고자 하는 말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칼의 노래’라는 책을 쓴 김훈 이라는 작가는 “한국어로 글을 읽는다는 것, 한국어로 사유를 한다는 것은, 조사를 바르게 이해하지 않고는 한국말을 이해할 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한국어의 모든 언어의 장치, 문법의 구조 그리고 사유의 전개는 조사의 매개가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말의 운명적인 특징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말의 조사는 매우 빈약하고 어떤 의미로는 모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호한 조사 안에 많은 자유의 여백이 있고, 많은 창조의 공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시를 쓰면 한 멋이 더 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중에 한국을 떠나 온지 오래 되시는 분들은 영어도, 한국어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이]와 [은]의 조사에 대해 생각하면서 “아니 뜻이 이렇게도 달라?” 하고 놀라시는 모습들을 상상해 봅니다.
우리는 평소에 대화 중에 생각 없이 말을 해도, 들을 때 잘 새겨듣는 적극적인 소통의 달인(?)입니다. 사투리가 툭 튀어나와도,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해도, 부드럽지 못해도, 이해하여 잘 수용해서 전하는 저의 설교로 매주 은혜가 충만했으면, 하는 것이 저의 간절한 기도 제목입니다. (장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