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과정의 임상을 경험 해 본 사람은, 분노를 토해 내는 내담자를 대할 때 마음 한편으로는 조용한 안심을 느끼게 됩니다. ‘아, 이 분이 살아 있네. 제대로 화를 낼 줄 아는 분이구나. 참 감사하고 다행이다’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 이유는 분노를 ‘목표로 향하는 도중에 방해받거나 부당한 일을 겪을 때 느끼는 부정적 감정’으로만 정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대하여 화가 치민다면, 분명히 자신의 존엄성과 소망이 침해된 어떤 상황이 벌어진 것인데, 어떻게 객관적으로 저항하고 적응할지를 몰라서 불안과 두려움을 토해내는 감정이므로 충분히 해결할 개연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파괴적인 적개심의 분노와 건강하고 정당한 분노는 다릅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과정에 화가 나는 것은 회피와 혐오와 증오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연히 정당한 분노는 표출해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억제하고 무의식적으로 억압하다보면, 그 억눌린 분노로 어느 순간부터는 몸 이곳저곳에서 통증 반응이 나타나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지 더러워서 피하냐’ 하고 회피만 하면 그 대상과는 마음에서 멀어지고 냉소적 성향이 고착됩니다.
내 생각에 맞다 틀리다는 차원으로 인해 화가 난다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써 주관적 윤리개념이 있기 때문에 당연하지만, 어떻든 분노의 문제가 건강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지속되면, 부정적인 사고와 공격적인 언어로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옳음을 계속 주장하고 본인 의견에 대한 공감을 강요하기 때문에, 특히 가까운 가족들이나 교회 공동체에 본의아니게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분노의 문제가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생각에 공감이 되지 않을 때 분노가 일어났다면, 공격적인 분노가 되어 본인 자신과 타인과,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내가 주장하는 생각이 아무리 선하고 옳아도 사랑이 없는 비판적이고, 위협적이고, 공격적이면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독단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부부사이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해결 되지 않은 분노가 있으면, 그 분노를 풀기 위해 다른 대상을 찾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어딘가에서 누구에게라도 입증할 때 안정감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노의 감정을 특정한 정치인들에게 풀고, 직장 동료에게 풀고, 심지어 교회 지체에게 푸는데, 다른 사람은 어느 정도 짐작하지만 정작 본인 자신은 전혀 그 사실을 모르게 됩니다.
해결 되지 않은 분노가 쌓이면 반드시 죄로 이어집니다. 먼저는 본인의 영혼에 치명상을 입게 되고, 결국 다른 사람과 공동체에 해를 끼치게 됩니다.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6,27)고 했습니다. 매일 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동행으로 인해 감사와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연말연시가 되길 바랍니다. (장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