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currently viewing 지금 우리는 성공에 대한 성경적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성공에 대한 성경적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평가의 기준은 외형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점수, 실적, 외모, 규모나 능력과 같은 생산성의 근거로 사람이나 공동체를 평가합니다. 그래서 더 높은 위치에 오르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면 일단 그 사람을 인생의 성공자라 평가합니다. 직장이나 사업을 해도 결과나 실적이 좋으면 유능한 직원, 좋은 회사로 평가받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자원과 기능을 평가하는 기준은 신앙과 교회에도 적용됩니다. 미국의 교육 철학가 존 듀이(John Dewey)가 시카고 대학에 등장하기 전 까지는, 교육의 목표가 하나님 중심의 인간을 키워내는 것이었으나, 초자연적 신앙을 배제하고 인본주의적 도덕과 경험을 강조한 그의 교육 사상이 미국을 지배하게 되자, 신앙도 생산적 가치와 더 나은 삶을 지향하고 가시적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 미국 문화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미국적인 종교교육 사상은 종교성이 강한 우리 한국 이민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전에는 신실하고 청렴한 사람이 존경을 받았지만, 지금은 성공하지 못하고 돈을 많이 못 벌면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비웃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떠하든지 많은 돈과 높은 지위를 차지하거나, 재능이 있어서 돈 많은 성공한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과 상관없이 추앙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보니, 교회 안에서도 세상적인 평가에 이끌려서 교인의 숫자, 예산의 재정, 건물의 효율성으로 교회와 개인의 신앙을 평가하는 위험에 빠져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기뻐하며 자랑하다보니, 하나님 자체( Himself)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자연스럽게 성도와 교회가 더욱더 세상을 욕망하고, 세상에게 미움 받을 용기를 서서히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생산성이 없어서 인간 대접을 못 받던 여성과, 어린이, 죄인들을 오히려 인격적으로 대하였습니다. 반면에 사람들의 칭찬과 성공에 목말라하는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을 사정없이 야단 치셨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자기를 우상화하고, 유용성과 생산성과 종교적 효율성을 자랑한 것은, 하나님의 시선을 외면한 채 외식하며 오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기준 앞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따르려면 교회에서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가 주변의 인정과 평가에 이끌려 인생을 살면 하나님의 눈은 의식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과 시선을 끌기 위해 ‘할 수 있음’의 강박에 붙잡히면, ‘해야 함’의 강제성으로 인해 위축되고 쉽게 영혼이 피곤해집니다. 하나님이 조건 없이 주시는 복음의 기쁨이 내면에서 금방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니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평가에 시선을 두면서, 성공에 대한 세상의 기준으로 인해 위축되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나의 위치에서 “하나님은 과연 어떻게 보실까?” 이런 질문을 하면서, 사람의 인정과 성공에 목말라 하지 않고, 묵묵히 말씀 따라가면 주변의 평가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영성은 무엇을 얼마나 이루고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씀에 순종하며 하늘 평안을 누리고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잠시 사람들의 인정과 평가보다도, 성공에 대한 성경적 기준을 다시 세우고, 부족해도 복음을 즐거워하면 넉넉히 감사하며 매일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장목사 드림)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