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내면 가운데 일어나는 감정을 숨기거나 속이기가 어렵습니다. 말로는 속여도 내면은 못 속인다는 말이 맞습니다. 속마음을 아무리 감춘다고 해도, 얼굴 표정의 어느 부분에는 그 감정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표정관리를 잘 해야 사회생활에 성공한다고 하면서, 솔직함은 죄이고, 포커 페이스(poker face: 무표정)만이 유익이라고 말합니다.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얼굴은, 인자하며 신선하고 따뜻하며 밝고 여유와 유머가 넘치는 표정이어야 성도들에게 더 없는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교회와 성도님들의 영적 상태에 책임을 져야 하는 목사는 마냥 그렇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마음 가운데 탄식이 있고, 아픔이 있을 때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은 썩 밝지 않고, 굳어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 안에서 담임목사의 위치는 성도들을 사랑하고, 동시에 성도들의 내면의 죄성과 싸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얼굴에 두 가지 표정이 보이는 것은 정상입니다. 성도들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못할 때는 탄식이 얼굴표정에 나타나고, 성도들의 감동스런 헌신을 보면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기쁨과 행복함이 얼굴표정에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가 강단에 서면 일부러 밝은 표정을 하고 웃고 미소를 띤 표정으로, 부드러운 연출을 하라는 것은, 세상적인 리더십 이론입니다. 왜냐하면 목사의 얼굴 표정은, 말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경책하는 말씀이 나오는데 히죽히죽 웃는 표정을 하면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며, 소망과 기쁨의 말씀이 나오는데 인상을 쓰면서 냉소적인 표정을 짓는다면, 정서와 의지와 행동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목사는 두 가지 표정이 있어야 합니다. 엄숙함과 유쾌함의 조화입니다. 평소에 유쾌함이 아주 중요하지만, 엄숙함이 동시에 있어야 성도님들 영혼에 유익이 됩니다. 목사가 유쾌함이 있을 때 교회 분위기가 밝고 즐겁게 되고, 엄숙함이 있을 때 성령님의 통치로 교회 분위기가 맑게 정화되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부드럽게 듣기 좋게 꾸민 말과 보기 좋게 꾸민 거짓 표정은 교회에 유익이 안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얼굴도 두 얼굴입니다. 하나님은 기쁨이 충만하신 분이시지만, 때로는 분노가 가득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3년을 보내실 때, 표정에 기쁨이 충만하셨고, 종교지도자들이 성전을 더럽힐 때는 분노의 표정도 나타내셨습니다. 겉과 속이 같으니 두 얼굴이셨고, 가짜 웃음을 짓고 어색한 안도감으로 표정을 꾸며 내지 않았습니다.
저의 표정이 굳어 있으면,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성도님들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저 자신에 대한 좌절 때문이고, 제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성도들이 기쁨의 반응이 없을 때는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니 목사가 힘이 빠져 있을 때 칭찬과 격려로 응원을 해 주시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라, 분명히 선한 일입니다.
목사는 종입니다. 성경적 의미의 종이란, 누군가가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필요를 저의 필요보다 우선시하는 사람이 목사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이 되면, 서운한 생각을 심어주고 관계가 소원해질 위험 부담이 있어도, 냉정을 유지하고 감내하는 것이 목사입니다. 혹시 제가 토요일과 주일의 표정에 긴장이 보이면, 그때는 무조건 웃으시고 잘 봐 주면 좋겠습니다. (장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