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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게 선물이 되는 삶을 살기로 작정합시다

제가 어릴 때 조부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긴긴 겨울 저녁이면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밤참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마지막에 조부님은 일장훈시를 했습니다. 그 중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되는 당부가 하나가 있는데, 주변 사람을 잘 모시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저의 조부님은 당신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린 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술친구가 많아서 이런 저런 분들이 밤늦게도 찾아오고, 한낮에도 찾아와서 저의 어머니께 사랑채에 술상을 차리라고 하는 명령(?)을 많이 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밤늦은 시간에 시조 비슷한 것을 노래라며 부르면서 술잔을 기울이시고, 그때 그 시중을 든다고 부엌에서는 분주히 움직이며 긴장하시는 어머니를 자주 봐 왔고, 뭔가 조금 실수를 하면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을 봐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이 지나면, 맑은 정신으로 선비처럼 이런 저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 중에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 사람이 3종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꼭 있어야 할 사람, 있으나 마나 하는 사람, 없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웃에게 선물’이 되어 주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고 보니 참 분명하게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성경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조부님은 유생(儒生)이라 예(禮)와 덕(德)을 강조한 분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의아합니다. ‘이웃에 선물’이 되어 주는 삶이 뭘까 하며 어린 나이에 어리둥절했는데, 예수님 만나고 난 후에 그것은 이웃을 섬기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전혀 그렇게 살지 않는 것 같은 조부님의 삶과 그런 윤리적 가르침은 굉장히 이율배반적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시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한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과 우리는 매일을 살아갑니다. 감정이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마음이 흘러가는 그대로 방치하면, 미움과 싫음이 생각을 장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이 나를 바꾸는 마음훈련, 회복 탄력성을 발달시키는 훈련은 교회생활에서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부터 내가 이웃에게 선물이 되어주는 삶을 조금씩 살면,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만날 때 진심으로 그 자리에 없는 분을 칭찬하고 높여주는 사람, 자기 자신의 부족함과 약점을 솔직히 말하는 사람, 나이 적은 사람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귀를 기우려 주는 사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긍정적인 소식을 전하는 사람, 나쁜 소식을 좋은 희망의 소식으로 바꾸어 전하는 사람, 이웃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삶이 아니라 내 자신이 그 사람의 눈높이로 맞추어 주는 사람, 마음에 맞지 않아도 쉽게 삐치지 않고 그 표정이 변하지 않는 사람이 복음의 사람이고 세상에서 승리합니다.

교회나 목장에서 이웃의 선물이 되어 주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주장을 강하게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언제든지 다 맞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의 생각은 자기 확신의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 중심의 생각을 하고 내 자신의 본분을 알고 다른 사람의 영역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한 발 물러서는 것입니다.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주의의 삶을 의도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부터, 목장에서부터 서로에게 선물이 될 수 있으면, 서로 세상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장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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