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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제가 참 못된 목사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며칠 전에 다른 교회에 다니는 분이 오랫동안 홀로 되었다며 재혼 상담을 해 왔습니다. 나이가 벌써 황혼에 접어든 상태인데 결혼을 생각한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본인의 솔직한 입장을 많이 들어 주었지만, 상담의 결론은 성경적 원칙으로 권면하고 끝났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새벽 기도자리에 앉았는데, 저 자신이 참 못된 목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있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외로움이 어떤 상태의 느낌인지 그 감정을 모르기 때문에, 너무 쉽게 원론적인 조언만 한 것 같아서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외로움에 대한 감정이 어떤지를 촘촘히 생각하는 중에 서재에 꽂힌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고, 읽었던 기억이 가물거려 주저 없이 속독으로 읽었습니다.

저자는 홀로 외로움을 잘 극복한 경험을 표현한, 일본 메이지대 교수 ‘사이토 다카시’인데, 혼자 있는 시간이 힘들다는 사실은 외로워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잘못된 관계에 휘둘리는 사람이 되어 평생 세월을 낭비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주변에 많다고 합니다.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혹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키울 수 있는 시간을 갖는 이로운 점이 있다고 했는데, ‘뇌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지적인 생활이야말로 혼자 있는 시간의 본질이므로 혼자 있는 것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혼자 있는 시간이 항상 주어지는 것은 아니고, 혼자 있는 시간에는 자신을 객관화하여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니, 외로움이 나쁜 것이 아닌 것이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내가 세상과 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함께 있는 다른 사람에 나를 맞추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오늘의 삶을 허락해 주셨고, 나를 믿어 주셨기 때문에 오늘의 삶을 주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함께 있다고 다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은 혼자일 때 가능할 수 있습니다.

같이 있어도 외로울 때가 많은 시대입니다. 함께 있어도 정서적 단절로 인한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감정을 느끼는 병적인 외로움이 있고,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이고 긍정적인 혼자됨을 의도적으로 갖고 자진하여 고독을 찾는 사람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은 것이 이 시대입니다.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타인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일상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온 유한하고 고독하며 불안으로 가득 찬 세계, 그곳이야 말로 우리의 본래적인 세계이며, 그곳에서 비로소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밝힐 수 있다”며 냉철한 기염을 토해 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온전히 나를 마주하는 시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혼자 주님과 함께 있어서 더 깊은 신앙의 성숙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면, 같이 있어서 소음과 분주함과 신경 쓰는 것이 많아 ‘나’를 잃어버리는 것 보다는 훨씬 더 낫지 않겠습니까! 혹시 제가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해 섭섭했다면 ‘에이! 못된 목사’라고 한마디 ‘툭’ 내던지며 속으로 흉 많이 보시기 바랍니다. (장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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