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느끼는 감정은 이원론적 느낌이 강합니다. 좋다, 나쁘다, 규정하고 느끼는데, 그냥 감정일 뿐입니다. 실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주관적이지 객관적 사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느끼는 감정에 따라 함부로 마음을 결정하고 행동을 선택하면 꼭 후회가 따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감정으로 나의 말과 행동이 따라가면 한 순간에 중심을 잃기 쉽습니다. 느끼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고, 흔들리는 감정에 결정권을 내어 주면 계속 상처 받고, 마음의 문은 닫히고, 스스로를 소외시키며 교만의 굳은살이 더 두껍게 됩니다.
믿음이 자랄수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감정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커 보이는 문제도 그 문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이 내 곁에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나의 감정을 제어하면서 그 분께 내 결정권을 내어드리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믿음이 깊어 갑니다.
신앙생활은 목사를 비롯해서 교회의 지체들에게 시험 들고 상처받을 때도 있습니다. 불쑥 분노가 치밀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밉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사실과 상관없이 짐작과 추측을 통해 정죄 당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혼자 그렇게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의 감정은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소극적으로는 실망감, 무력감, 소외감이고 적극적으로는 분노, 시기, 질투입니다. 이 두 감정의 근원은 나의 열등감과 교만에서 나옵니다. 내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인한 열등감과,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게 되는 교만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감정은 습관이 됩니다. 나쁜 감정을 물리치지 못하면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극복하려면, 지금 내가 느낀 감정은 실제 오늘 일어난 사건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실제 사실이 아닌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감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에 지배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소에 걱정이 많은 사람은 걱정을 할 때가 마음이 편합니다. 걱정할 만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심리적인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 걱정거리를 찾아 걱정하는 것입니다. 우울함이 습관화되면 좋은 일이 있어도 잠시뿐 입니다. 다시 우울함을 찾아 헤매고, 그 우울한 상태를 즐기며 환경이나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이미 내 안에 결정된 그릇된 감정 때문에, 사람관계나 현실의 현상에 대해 스스로 자신을 소외시키고 상처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에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익숙한 그 감정 때문에 복잡한 상념으로 피곤해하고, 마음에 선을 긋고 오해하며 관계를 불편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말씀과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정직하게 그리고 낮은 마음으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겸손하게 당사자에게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거짓 감정에 속지 않는 것입니다.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은 악령이 심어 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따라 생각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말씀을 따라 살아 내는 것이 믿음의 실력이고, 성령에 순종하면 부작용이 없습니다. (장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