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은 목사이고, 좋은 나라 미국에서 목회 잘 하고 있다’고, 항상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남들에게 좋게 말하는 어머니의 마음엔 그리움으로 시퍼런 멍이 들었지만, 막상 전화 통화할 때는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울음 섞인 말로 ‘건강 조심하고 교인들에게 나쁜 목사란 소리 듣지 않도록 잘하라’며 끊을 때 저의 마음에는 한탄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나를 낳아서 키워 주신 부모님을 이해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교회 밖에 모르고 하나님 아버지만 섬기면 되는 줄 아는 바리새인과 같은 못난 저 자신을 볼 때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불효 자식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전에 늘 자기 야망과 바람을 다 못 이루어서 안타까워하며, 좋지 않은 일은 항상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자괴감으로 한 잔 술로 현실을 잊어 보려고 하시던 마음 약했던 나의 아버지, 진심으로 부모형제 남들에게 잘해 주려고 애썼지만 돌아오는 것은 오해로 마음에 슬픔이 가득차서 탄식하시던 아버지, 가을철이면 보고 싶고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어느 듯 생물학적 나이로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느끼지만, 아직도 어른답게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 같아 홀로 우는 새벽기도 자리가 그래도 위로가 되어 지금껏 견디게 했고, 앞으로도 계속 견딜 것이지만, 하늘로 귀향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엾은 나의 어머니, 그 기다림을 생각하면 제 자신이 미워질 때가 많습니다.
조은파 선생이 작사하고 성악가 박인수 교수가 부른 ‘결혼의 노래’ 중에, 부모님과 관련하여 감동적인 좋은 표현이 있는데, ‘비바람 거친 파도 작은 배로 떠나지만 / 믿음과 사랑의 등대로 행복을 지키리라. / 서투른 인생길을 꽃 한 송이 피우듯이 / 희생과 소망의 빚으로 / 사랑을 지키리라.’ 늦게 예수 믿고 겨우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어머니의 인생 회한이 스멀스멀 새벽 기도자리에 느껴질 때, 폐부 깊이 아려 오는 마음을 참고 또 참을 때가 있습니다.
서투른 인생길 살아오며 오직 한 가지 소원이 자식 잘 되는 것, 가녀린 꽃 한 송이 피우듯이 온 몸 던져 사랑으로 못난 자식 키워 주셨는데, 지나온 인생 여정 몸부림치듯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온 흔적의 굽어서 펴지 못하는 허리와, 양쪽 눈 옆에 깊게 파인 주름살, 어머니가 살아온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극복한 굴절 많은 인생길이었습니다.
‘발레리나가 아침에 일어나 아프지 않는다면 죽은 거나 다름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누구나 살아온 시간에 상처가 없다면 살지 않은 거나 다름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 다 자기 자식 돌보느라 흰머리 대머리가 되었고, 골방 같은 곳에 갇혀 혼자 사는 나의 어머니 살아온 인생길 상처 얼룩은 누가 치유해 줄 수 없으니, 안쓰러운 마음에 새벽에 뜬 둥근 달이 외롭게 보이고, 우두커니 처다 보니 94살 어머니 얼굴이 겹칩니다.
두서 없는 서투른 기도로, ‘우리 아들 목회 잘 하게 해주세요. 교인들에게 사랑받게 해 주세요.’ 하고 나를 앉혀 놓고 마음 졸이며 기도하던 어머니, 하루에도 수십 번을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기도로 대신한다는 어머니, 너무 옆에 오지 마라 쾌쾌한 몹쓸 냄새 난다며 연신 뒤로 물러서던 어머니, 잠깐 꿈을 꾼 것 같은데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다며, ‘어서 가야지, 어서 가야지, 그래야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지’ 하시던 어머니, 사람 구실 제대로 못하는 철없는 아들의 한탄의 기도는, 엄마 주님 꼭 붙잡으라는 말뿐. (장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