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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여정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살아 있다면 과거 없는 현재가 있을 수 없습니다. 현재는 과거 앞에 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과거를 잘 읽어내야 현재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모르는 사람은 마치 기억력을 잃어버린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현재를 객관적으로 잘 모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과거는 나를 위한 하나님의 수고하심으로 보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 저변에 깔린 다양한 신념들은 그 표출된 복잡한 현상만 보아도, 어느 정도 어두운 과거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기적 인본주의 신념으로 온 세상은 성공을 위해 경쟁으로 고군분투하며, 사상과 이념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촘촘하게 노골적으로 편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과거를 정확히 진단하고 시대 흐름을 성령 안에서 읽어내야 신중하게 복잡한 현재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이 있는 이유가 현재와 미래를 보여 주는 거울과 창문임을 알 수 있듯이, 과거를 통해 우리는 현재의 왜곡된 시각을 순간마다 교정할 수 있고, 더 정확한 관점에서 모험하며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는 주님과의 만남으로 ‘칭의’의 의미를 알았고, 현재는 성도로 살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한 삶으로 ‘성화’의 발걸음을 계속 앞으로 옮기고 있고, 미래는 주님과의 재회를 기대하며 구원의 완성을 위해 매일 ‘영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역사나 개인의 삶에 대한 과거의 해석은 두 가지입니다. 과거를 거울로 보는 것과 창문으로 보는 것입니다. 거울로 보는 것은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얼굴에 도취됩니다. 과거 속에 일그러진 얼굴을 보게 되는데, 하나 둘 늘어나는 주름살과 나이 들어감에 대한 세월의 애달픈 사연의 흔적입니다.

과거를 창문으로 보면, 내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 다스리는 바깥 열린 세상을 보기 때문에 쉽게 자기연민이나 자기도취에 빠질 수 없습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있음에 대해 감사하고, 끝나지 않은 길의 여정에 대한 설렘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실패해도 물러설 데가 있는 곳을 알기에,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합니다. 과거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입에 담아 쏟아내는 푸념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실수가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때 그 실수가 없었다면, 현재 이만큼의 성장은 없고,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덮어주심에 대한 감사는 없게 됩니다.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과거에 얽매여 자기처벌에 빠지면, 혹시 시행착오로 또 과거처럼 될까봐 현재에서 방황하고, 하나님이 잘 해 주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도망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앞에 있고, 앞으로 도망치는 것을 우리는 전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사43:18)고 하십니다. 내년을 주신 것은, 더 좋은 날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표현입니다. 아듀 2025년! (장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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