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 제가 한국 방문 때 일어나서 쇼킹한 뉴스로 나왔지만 그때 뿐이고 지금은 뉴스에서 잠잠합니다. 캄보디아에 한국 젊은 세대가 가서 범죄에 가담하여 정부가 특별 비행기를 보내 한국으로 송환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창 그 일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수치심에 빠져 있을 때, 어느 청년이 또 캄보디아를 가려 다가 공항 직원의 기지로 막은 일이 있었습니다. 왜 캄보디아로 가는지 그 목적을 묻자, 오히려 왜 막느냐며 자신은 무작정 가야 한다고 했고, 청년을 설득했지만 막무가내라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항직원의 끈질긴 설득과 항공권에 적힌 중국 전화번호, 대포통장, 텔레그램 대화방의 글을 확인하고 출국을 막았다고 합니다. 죽을 줄 알면서 그래도 집요하게 가려고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설득한 공항직원 때문에 그 청년은 캄보디아에 못 가서 마침내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메시지 전쟁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 먹으면 죽는다고 하시는데, 마귀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속입니다. 상반된 메시지이며 정반대입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 앞에 세상의 소리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메시지보다 메신저가 중요합니다. 메시지는 그 출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메시지는 듣고 싶은 말이고 원하는 말이며,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원치 않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살게 되고, 듣기 원하는 메시지를 따라가다 보면 죽는 자리에 서 있게 됩니다.
성경 속에 남유다는 듣기 원하는 가짜 선지자 하나냐의 말을 신뢰하고, 자기가 원하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바벨론 왕의 멍에가 꺾일 것이고, 2년 안에 다 회복될 것이라고 했는데, 본인은 2달 지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No 하고 70년이 지나야 돌아오게 되니 항복하라며 그렇게 하는 것이 복이라고 외쳤습니다. 메신저가 메시지보다 더 중요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감정과 의지를 분석합니다. 약점과 욕망과 의심과 불만과 분노를 잘 알고 접근하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설계하게 합니다. 분명히 죽는다고 했는데, 죽을까 하노라로 바꾸고, 먹지 말라고 했는데, 만지지도 말라고 애매하게 비슷하게 바꿉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제 꾀에 넘어지도록 마귀가 제대로 알고 접근합니다. 마귀가 사용하는 도구는 똑똑하고 불만 있는 사람이고, 머리 좋고 욕심 많은 사람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이른다’(약1:15)는 말씀은 100% 맞는 불변의 지고한 말씀입니다.
무엇을 하는가 보다 지금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좌절과 분노와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마귀의 계략입니다. 그래야 자기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을 마귀가 알고 있으니, 그냥 십자가 앞에 지금의 상태를 인정하고 나오면 살아납니다. 잠수타지 말고 도망치지 말고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나오면 살고, 숨고 뒤로 물러가면 죽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주어진 가죽옷을 입고, 부끄러움을 가리면 살게 됩니다. 인간적인 생각의 무화과 나뭇잎(철학, 심리학, 과학 등등)으로는 결국 죽을 길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고, 성도는 미움 받을 용기로 생명 살리는 메신저가 되어야 합니다. (장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