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나오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사도 바울을 리더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성경을 읽는 우리는 그렇게 탁월한 사도 바울을 그들이 몰라주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들이 처음에는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가자 바울을 신뢰하지 못하고, 믿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섬기면서, 그들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일을 하면서 사역했습니다. 주님이 세운 교회를 위해 희생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지금 같으면, 사례비를 받을 때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하고 모두 다 교회에 헌금하는 것과 같고, 풀타임 목회자라면 많든 적든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직 교회만 섬기는 자세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런 바울을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에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헌신과 배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울의 동기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귀에 솔깃한 새로운 설교를 하는 사역자들을 칭송하고 바울을 배척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의 사주를 받은 것도 있겠지만,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교만하여 영적 스승인 바울의 좋은 팔로워가 아니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세상적 가치관으로 바울을 바라보았기 때문인데, 바울은 초라해 보이고, 실력도 없는 같았고, 오히려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유능한 것 같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절대 세상적인 기준으로도 미달되지 않는다(고후11:17,18)는 사실을 아예 작정하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좋은 리더가 되기 전에 좋은 팔로워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팔로워가 되려면, 자기 영혼을 지도하는 목회자를 믿어 주어야 합니다. 믿어주라는 말은, 맹목적으로 추종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믿어 주라는 말은, 동기가 100% 순수해서 믿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목사라고 해도 동기가 100% 순수할 수 없습니다. 이기적인 동기가 숨어 있습니다. 다만, 주님의 교회를 위해 희생하려고 하고, 성도들의 영혼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하려고 하고, 더 많은 영혼 구원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다면, 그 동기를 선하게 믿어줄 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지시와 의견을 따라주고 반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시에 좋은 팔로워가 되려면, 교회 담임목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목사를 더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예수님과 남편 혹은 아내)에게 손해와 파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이 그렇습니다. 이유는, 인간은 누구나 사랑의 한계가 있고, 이기심으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예수님의 사랑이 고갈되고 타인에 대한 사랑이 변질되어 결국 상대방과 자신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좋은 팔로워가 되지 못한다면, 절대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리더가 되려면, 좋은 팔로워가 되어야 함이 성경적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좋은 리더 역할을 하는 목회자들을 보면, 평신도나 부목사 시절에 자신의 담임 목사에게 순종하고 잘 섬겼던 분들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점과 약점이 있지만, 주님 닮으려고, 주님 뜻대로 살려는 모습이 보이면 존중하고 따라 주면,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를 훌륭한 리더로 만들어 세워주실 것입니다. 완전한 사람을 찾아 리더로 모시려고 하면 평생 좋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장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