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은 제가 늘 여유가 있게 보인다고 하고, 어떤 분은 제가 긴장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고 하십니다. 둘 다 맞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부터 긴장과 여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서, 저녁에 잠자리를 들 때까지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합니다.
때때로 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음식처럼 설교가 매끄럽지 못해도, 설교 한 편을 준비하면서 긴장하며 몇 번이고 문장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합니다. 목회를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닌데,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토요일과 주일에는 제가 더 긴장을 하게 되는데, 그 긴장은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얼굴 표정과 안색에 예민함으로 나타나고, 말씀을 전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몸에서 긴장이 느껴집니다. 물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고 여유를 갖고자 의지적으로 노력하지만, 성도님들 앞에서 긴장하지 않는 목사는 절대 메시지나 삶에 발전이 없음으로 당연히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주 목회자 코너를 쓰고 목자 메시지를 준비할 때도, 긴장과 여유는 마찬가지입니다. 매주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할 때도 긴장과 여유 사이를 오가고 있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민한 분들은 제가 어떤 때는 온정이 있는 것 같지만, 어떤 때는 굉장히 이성적이고 냉정한 것 같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잘 보신 것이고, 맞습니다.
성도님들이 볼 때, 담임목사가 긴장감이 없으면 성도님들을 쉽게 보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을 쉽게 본다는 의미는 신중하지 못하고 무책임 무감각의 상태이고, 성도님들을 위한 기도를 쉬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마음에 교만하고 자만해져서 말과 행동에 긴장 장치가 풀어질 때입니다.
그러나 성도님들 보기에 제가 늘 긴장하는 모습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매일 삶에서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친밀히 동행하고 있다면 당연히 주님 주시는 평안이 있어야 하고 여유가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긴장과 여유 사이를 항상 줄타기 하는 것을 원합니다. 영적인 감각이 깨어 있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도한 긴장으로 웃음이 전혀 없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피곤이 누적되면 목회에 독이 되고, 결국은 성도님들에게 해가 되지만, 어느 정도 긴장을 유지해야 영적 민감성을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도 당연히 저와 스스럼없이 지내야 하지만, 가끔 저에 대해 긴장감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고 성도님들이 영적으로 건강한 징후입니다. 그래야 서로 주님 안에서 존중하며,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함부로 다 하지 않고 참으며, 서로 하나님을 사이에 두고 겸손히 섬김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나 성도는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면, 자기의 부족함에 대한 긴장과 본인의 믿음에 대한 겸손의 표현이 삶에서, 말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고전9:27)’하고 고백했습니다. 장목사에게 긴장이 보여도 넉넉히 잘 봐 주시길 바랍니다. (장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