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속에서 갈등을 겪을 때, 내가 그를 사랑한다면 상대에게 져줍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일단 부모가 져줍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이기려고 하는 사람은 아직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반항을 하고, 대들 때에도 부모들은 자녀들을 이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부모의 기쁨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도 부모는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부모에게, 부모의 부족이나 잘 못해 준 것들을 들먹이고, 섭섭한 마음을 표현할 때에 부모는 침묵합니다. 자녀들이 철이 들기 전까지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섭섭한 마음이 들고 마음이 아파도 그러한 자녀들의 말들을 마음에 묻어두고 내색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잘못된 행동을 해도 자녀가 철이 들기 전까지는 부모가 기다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성숙한 사람이 져줍니다. 기도해 주었고, 섬겨주었는데도, 도리어 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입고 서운한 마음이 들어도 내색을 하지 못합니다. 그동안 기도하고 섬겨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목사와 성도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에는 목사가 져야 합니다. 목사에게 있어서 교회 식구들은 영적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때때로 오해를 받고, 성도가 서운한 행동을 해도 마음에 품고 내색을 할 수 없습니다. 목사가 고쳐 주려고 말을 하면, 당장은 고쳐진 것 같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성도가 목사보다 영적으로 더 성숙한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본인이 그렇다면, 목사에게 약함이 있고 부족함이 보이면 속으로, 쯧! 쯧! 쯧! 하면서도 겸손히 져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목사도 살리고 자신도 삽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데 꼭 목사를 이기려고 하면 결과적으로 본인이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됩니다.
세상의 방법은 항상 이기는 자가 승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법은 항상 져주는 자가 승자입니다. 뻔히 아닌 것을 알면서 져주려고 할 때는 아픔이 있습니다. 상처도 입고,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져 주고 난 뒤에 뒤돌아보면 상처도 영광이고 언제나 하나님의 칭찬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먼저 져주는 것은 그냥 그 사람을 품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점보다 장점을 발견해서 칭찬과 응원을 해 주어야 합니다. 부족함이 있어도, 참고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 참 잘했다’ 하시면서 칭찬하시고, 하늘에서는 상급으로, 땅에서는 감사할 일들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장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