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상이 아닙니다. 우상이 아닌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은 우상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우상숭배를 한다는 것은 가당찮은 말이지만, 실제로 우상숭배를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뿌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명히 밝혀 주신 뜻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다 해도 그분의 뜻을 거역하면 그것은 가장 기만적인 형태의 우상숭배입니다.
자기숭배는 이기주의 신앙생활이고, 자기중독의 현상으로 자신을 숭배하는 것임으로 우상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비전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비전에 관심이 없다면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목사가 교인들에게 기분 좋은 말만 한다면 교인을 우상으로 섬기는 목사입니다. 자기 안전을 위하고 편하기를 원하며,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격려와 위로의 말만 하면 우상숭배에 빠진 목사입니다.
성도가 영혼을 찌르는 말씀이 부담스럽고 기분이 상하고 습관적인 죄를 끊어내지 못하면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보이는 우상이 아니라, 마음속에 세워진 우상을 품고 그 우상을 즐거워하는 중에 있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영혼을 천천히 죽이는 독입니다. 우상숭배는 견고한 진과 쓴 뿌리 안에서 안전을 확보하고 숨어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이 어떤 상태인지, 애통하는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를 모르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욕심에 함몰된 상태로 있는 것은 우상숭배 중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욕심이 순종보다 중요해질 때, 죄는 기만을 통해 힘을 키웁니다. 우상숭배에 사로잡히면 간절히 원하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하나님의 허락을 구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숭배하는 것입니다.
서서히 마음이 죄로 뒤덮여도 알아채지 못하는 굳은 마음은 우상에게 포로가 된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줄도 모르고, 우상이 아닌 하나님을 우상숭배 하듯 대하였던 때가 예레미야 때입니다.
우상숭배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굳어질 때 시작되는 것으로, 하나님을 이용하여 나의 욕구와 원함을 채워 만족시키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고의적인 죄, 알면서도 짓는 죄,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상태입니다.
이 우상숭배에 대하여,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었다(롬1:21,22)’고 합니다.
성령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상태는 우상에 잡혀 있기 때문이며, 영적인 간음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죄를 그대로 품고서도 괜찮다는 착각, 누룩과 같이 순식간에 퍼지는 무기력, 입술이 계속 불평과 비난 정죄에 열려 있다면 우상숭배 중에 있습니다. 영적 잠에서 깨어나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장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