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다원주의 시대입니다. 이 다원주의 시대의 현상은 사람들에게 강요당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너도 옳고, 나도 옳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신념을 갖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이고, 자신의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면 무례한 일이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다원주의 사고 뒤에는 절대 진리란 없다는 생각이 딱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고는 약간만 논리적으로 따져 봐도 금방 모순이 쉽게 드러납니다. 예컨대,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는 주장을 수용하면, ‘절대 진리는 없다’는 그 주장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주장도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생각 없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을 말이 되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사는 것이 다원주의적 사고의 특징이라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여과 없이 내뱉으면서, 그 사고의 형성이 쉽게 접하는 인터넷이나 동영상의 내용 그대로를 수용하니까,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사고에 이성이 마비된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다원주의 사고의 영향은 종교에 대한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똑 같고, 차이라면 같은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론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메시지에 강한 반감을 느끼고, 다른 종교가 뿌리내린 곳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활동에 굉장히 거부감을 느낍니다.
종교는 다 똑 같고, 세계 4대 성인 중 한 사람이 예수에 불과하다면 이러한 반감과 거부담은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충분한 논리적 증거가 있다면, 다른 주장은 쉽게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지, 사실일 수 있는 개연성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죽어서 무덤에 묻혔습니다. 무슬림 지도자 마호메트도,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도, 유교의 창시자 공자도 모두 죽어서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과는 다른 분이고 성령으로 잉태된 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잉태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기록된 구약의 구속사적인 계시의 점진성을 통해 알 수 있지만, 더 명확한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 성령께서 성육신의 신비를 사실로 밝혀 주는 계시의 해석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복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포괄적인 더 큰 이해와 깨달음과 지식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논리성이 상식적이지 않고,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사탄이 속인다는 것을 모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부활로 입증되었고, 부활은 성령으로 예수님이 잉태된 것을 사실로 입증합니다. 예수님 오신 사실의 날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오. (장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