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linkedin
Share on whatsapp

내가 나의 나 됨을 알아가는 자리가 교회의 목장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나를 알아가면서 느껴지는 아픔이 싫어서 나를 알기를 싫어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 있기 마련이고, 또 내가 부정하고 싶은 ‘내가’ 내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편안히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의 모습 대부분은 나의 불행한 과거나 상처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내가 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려는 의지로 인해 ‘가면’을 오래 쓰고, 혹은 억누르고, 나의 상태를 알고도 들키지 않으려고 꼭꼭 싸매고자 할 때, 그 점을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적당하고 드러나게 되면 고통스러운 아픔으로 느끼니 싫어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반응하는 것을 심리학적인 용어로는 ‘방어기제’라고 하는데, 하나는 그 점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사람 잘못 봤다,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하면서 핑계를 대기 시작합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한편으로는, 인정은 하면서도, 사실 내가 그러한 것은, 이러이러해서 그랬던 것이라는 설명으로 합리화하게 됩니다. 역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변명입니다.

다른 하나의 반응은 지적을 받고 수치를 느낀 후에 내면에서 상대방에게 복수를 가하는 것입니다. “야! 그러는 너는 얼마나 잘났기에? 너는 뭐 그런 문제가 없는 줄 아니? 내 입장이 되면 너는 나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아!” 하고 공격적 반응으로 맞받아치는 것입니다.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어쩌면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여서 지적하는 그 사람도 똑 같은 그 문제를 가지고 전전긍긍할 수 있고, 본인 눈에는 안 보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 상태가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불편하고 감정이 상해서, 방어하고 변명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나는 내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나에 대한 불편한 사실이 아픔이지만, 수용하고자 하는 적극적 자세를 가지면, 비로소 내 문제가 조금씩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이해와 해석이 되면서 나를 조금씩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이 치유를 위한 결정적인 첫걸음이 됩니다. 나의 나 됨을 조금씩 알아갈 때, 건강한 신앙생활과 밝은 자아상과 긍정의 자존감의 울타리가 형성됩니다. 무슨 말을 들어도 시험 들지 않습니다.

교회는 서로 치료받는 병원입니다. 피상적 교제가 아니라, 서로 삶을 나누면서 내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진단과 도전 받는 자리입니다. 내 영혼의 상태를 제대로 보는 거울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변화와 성장과 성숙을 위해 아픔을 통과하면서, 기쁨과 감사를 경험하는 곳이 목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누구나 영적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권면과 지적을 두려워하고 싫어합니다. 설교에도 은혜를 못 받습니다. 말씀을 적용을 못합니다. 이러한 성향이 해결되지 않으면 신앙생활에 변화와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나의 실상을 계속 숨기고 내가 꾸며낸 허상을 내 자신으로 삼고, 보여주기의 나로 머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경향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기도를 통해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겸손한 수용 자세로 의지를 사용해서 받아드려야 합니다. 말씀을 받을 때 내 죄와 허물과 실수와 악함을 발견하고, 그 상태를 감사와 은혜로 여길 때, 내가 나를 알게 되고 놀라운 치유와 변화와 겸손한 마음이 형성됩니다. 매주 목장모임에 하늘 복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장목사 드림)

레이아웃 구독

최근 인기

더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