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주일에는 설교에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똑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고, 똑 같은 설교를 듣는데 어떤 사람은 계속해서 금을 캐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계속해서 돌을 캐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설교를 들었는데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고, 어떤 사람은 상처받았다고 합니다. 누가 옳을까요? 답은 둘 다 옳습니다. 왜냐하면 설교에는 듣는 사람에 따라 금도 있고 돌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설교도 그랬습니다.
설교에 돌을 캐는 사람은 이미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인 생각이 그 마음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이고, 금을 캐는 사람은 이미 설교를 이해하려는 의지와, 은혜를 사모하는 생각들이 그 마음에 가득 차 있는 사람입니다.
설교는, 설교자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아무리 설교가 좋아도 듣는 사람이 계속 돌을 캐면, 분명히 설교에 금이 있어도 하찮은 돌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끔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귀가 있다고 다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마음에 감사가 있는 사람은 설교를 들을 때 계속 금을 캐내고, 마음에 감사가 없는 사람은 설교를 들을 때 금은 골라내 버리고 돌만 캐 담습니다. 이것이 율법에 충만한 사람과 복음에 충만한 사람의 차이입니다.
지난 주 설교를 듣고 적용하여 삶에 변화가 있는 사람은, 설교를 들을 때 항상 금을 캐는 은혜의 사람입니다. 한 주 동안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쓴 사람은 설교에서 돌은 걸러내 버리고, 마음에 금만 캐 담습니다.
설교에 금을 캐는 사람의 특징은, 목사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설교가 좋아도 목사와의 관계가 불편하면 그 설교에는 받아들이기 싫은 돌만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듣기 전에 내가 목사를 좋아하고, 목사가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설교자에게 감사를 표현해야 할 부분이 많은 사람은 금을 계속 캐내고, 설교 안에 돌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언제나 설교 속에서 금을 캐는 사람은 관계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돌산이라고 해도 한 줄기 금맥을 찾는 사람은 돌은 쳐다보지 않고, 숨겨진 금맥을 찾아내듯이, 언제나 설교 속에서 금 만을 캐는 사람은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설교자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금을 캐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성령님이 그 심령에 충만하게 역사 하시는 중입니다. 마치 마른 스펀지가 물을 힘껏 빨아 당기듯이, 매주 말씀을 들으면서 금만 캐서 마음에 담는 지혜롭고 겸손한 성도님들 다 되시기 바랍니다. (장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