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 모르고 속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적어도 자신은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있어서 자존심이 우상인 것을 모르고 삽니다. 보이는 우상을 섬기지 않으니 자신은 우상숭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자기를 섬기는 격인, 자존심이 우상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 우상인 자존심이 깨어져야 신앙생활은 비로소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사탄은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존심을 만족시켜 우상으로 섬기라며 집요하게 매일 강요합니다.
실제로 성령충만 한 사람은 자존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에고가 죽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기분 나빠하지 않습니다. 웃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자존심을 자기의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은 충분히 받아드려야 할 말에도 상처를 받고 억울해하고, 분노를 삭이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자존심이 우상이 된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 성인아동으로 삽니다. 그 자존심 때문에 별것 아닌 것이 문제가 되고, 충돌하고, 침체에 빠지고, 거듭 상처를 받습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불화하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우상이 된 ‘자존심’에 찔림을 당한 것입니다.
속마음을 털어놓기 싫은 것, 자존심 상할까 봐 훈련 받기 싫은 것, 섬기기 싫은 것, 설교에 상처 받고 시험에 빠지는 것, 쉽게 인간관계 깨지는 것, 내 마음의 벽을 높이 쌓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 싫은 것, 별것 아닌데 무시당하는 느낌, 이 모든 것은 자존심이 우상으로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자존심은 사단의 견고한 진이며, 보이지 않는 우상입니다. 우상이 된 자존심이 깨어지는 그 순간이, 예수님 닮는 영성의 첫 입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과 말씀으로 자존심이 깨어지고, 자존심이 우상이 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넘어갈 줄 압니다. 둘째는 절대적인 진리의 문제가 아닌 이상 내 의견을 접을 줄 알고, 상대방에게 나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고집부리지 않습니다. 셋째는 어려운 현재의 처지와 환경에 대해 자기 연민이라는 어두운 감정에 빠지지 않고,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집중합니다.
자존심이라는 우상은 ‘순종’을 통해서만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 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존심을 죽이신 분이십니다. 바울 사도가 고백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말은 자존심, 에고의 사망을 의미합니다. 속히 순종을 통해 자존심이라는 우상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영혼에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장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