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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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일 속에도 그렇게 되어서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흑백논리 이원론적 사고에 굳은 사람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좋지 않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좋은 점을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났으니, 실망하고 부정적인 생각에 지배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 좋은 일 안에도 좋은 일이 숨겨져 있습니다. 좋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되어서 더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는 것이 크리스천입니다. 그 이유는 안 좋은 일을 허용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생각이 다르시고, 우리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 일 안에 좋은 일을 숨겨 두시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좋다, 나쁘다 하면서 딱 선을 그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포기합니다. 그런데 안 좋은 일이 생기고, 일이 안 될 때 그렇게 되어서 더 좋은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전혀 뜻밖에 생각하지 못한 좋은 것을 발견하게 되고, 새로운 길과 방향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어렵고 힘들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어떤 문제나 사건과 인간관계에도, 안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 되어서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반드시 좋은 것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 안 좋은 일 안에 특별히 좋은 일을 숨겨 두셨으니,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지금 당장 무엇이 안 되거나 어려움이 생길 때에 염려나 두려움 보다는, 이 일을 통해 어떤 새로운 좋은 일들이 생길 것인지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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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목회 중심은 기도입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은 우리 힘으로 해결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도움을 받아야만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 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나의 삶의 여정을 점검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매일 이른 새벽에 몸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심정으로 조용히 기도의 자리에 앉으면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쉽게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이니, 사람을 만나기 전에, 사역을 하기 전에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가장 귀한 시간입니다. 개인의 영적상태나, 교회의 영적 분위기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것은 기도입니다. 한 사람의 신앙의 깊이를 볼 수 있는 척도는 신앙경력이나, 직분이나, 어떤 사역을 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내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표시입니다. 내 힘을 의지하는 사람은 기도의 자리에 머무는 것보다 지식과 경험과 어떠한 방법을 찾아 움직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연약하고, 무능한 것을 아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인간적인 생각들이 쉽게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결국 후회할 일들이 생기고, 아껴야 할 시간이 많이 낭비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저의 목회 중심은 기도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기도로 충만한 성도들로 채워지기를 소원합니다. 교회가 기도에 전적으로 매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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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교회가 새롭게 살아 날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인해,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바꿔야 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많은 부분들이 바뀌고, 멈추고, 특단의 조치와 강요가 유감없이 받아드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 하나는, 목숨에 관련된 죽음의 문제입니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거리두기를 해야만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관계를 맺어야 할 사람에게 단절과 소통의 부재는 살았지만 산 것이 아닌 고립 그 자체인데, 죽음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분명히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의 마지막은 목숨입니다. 병들지 않고, 아프지 않고, 죽지 않기 위해서는 불편해도 참아야 하고, 기본적인 인사와 안녕과 윤리 부재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죽고 사는 문제로 귀결되고, 과학이 풀 수 없는 영적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거리두기로 관계 맺음을 금하니,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육신은 안전해지지만, 우울증이 심해지고, 스트레스를 피해보려고, 유튜브 인터넷 접속이 폭증되고, 고립과 격리에 의한 무료함과 외로움을 참지 못해 불필요한 사이트 접속이 급증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육체보다 영혼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치명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미국해외선교연구센터(OMSC)가 펴내는 IBMR 최신호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유럽과 북미보다 가난한 아시아 대륙이 기독교 인구수가 계속 증가되고, 매년 572만 명씩 증가한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전염병과 정치적 억압 등은 사람들을 교회로 몰려 들게 하고, 복음을 받아 드리게 하는 영적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는, 교회가 교회다워질 수 있는 때입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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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위기는 영적 부흥의 기회입니다.

요즘 세상의 매스컴에서는 온통 위기의 소식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인해 인명 피해, 경제적 피해로 어렵다는 말과 앞으로의 전망들이 어렵고 어둡다는 소식들입니다. 맞습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의 위기는 영적 부흥의 기회입니다. 지난 세계의 역사 가운데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지식과 전망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돌파할 수 있는 영적 DNA라고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들은, 어려울 때 영적현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위기에 직면하면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지난 역사 가운데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위기 속에서 복음을 받아 드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교회 안으로 들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 속에서도, 위기에 직면할 때 하나님은 원하시는 한 사람을 깨우고, 당신의 일을 하도록 하신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요셉, 모세, 다윗,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 베드로, 바울 등 수 없는 사람들이 위기를 겪으면서,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바 되었습니다. 위기 때 육적이고 혼적인 사람들이 영적 사람으로 깨어납니다.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위기를 당하면 일단 낙담하고 좌절하고 변명하고 당황하지만, 결국 나중에 가서야 자기를 객관적으로 알게 되고, 위기 과정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인생은 변수가 많습니다. 언제나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며, 하나님은 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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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숨기지 말고 자랑하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질병이나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릴 수 있습니다. 질병이 죄로 인해 오는 재앙도 있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적극적인 방어가 필요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아래는 뉴욕 순복음 교회 김남수 원로목사님의 조언인데,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내용이니 숙지하시길 바랍니다. ***첫째, 병을 숨기지 말라. 옛날 어른들은 병이 들면 숨기려 하지 말고 자랑하라고 했다. 병든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병을 자랑하고 알리면 먼저 아프신 분들, 지금 앓고 계신 분들, 또는 전문가들의 도움과 함께 기도를 요청할 수 있다. 몸이 아프거나 이상하면 바로 연락해서 서로 경험을 나누고 조언을 받고, 특히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하고 싶다. 병이든 것은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독감 중 고약한 독감에 걸렸는데 오픈해서 나누면 도움이 된다. 교회에 즉시 연락을 해서 기도의 네트워크를 사용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 둘째,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라. 병원에 다녀오신 많은 분들이 치료를 받았다. 망설이다 골든타임을 놓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면 위험하다. 사람이 머리가 아프고 설사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지만 기침을 오래하고 폐에 염증이 생기면 회복이 어렵다. 주치의도 있을 것이고, 심하면 911을 통해 가까운 병원으로 가라. 두려워하지 말고 전문가에 요청해서 도움을 받으라. 지금 보면 병원에 다녀오신 많은 분들이 치유를 받고 회복했다. 병에 걸리면 다 죽는다 생각하지 말고 병을 자랑해서 도움을 받으라. 지금 미국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설마 하고 미루고 있다가 나쁜 상태가 되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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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장목사 조금씩 팔불출이 되어갑니다.

요즘 제가 새벽기도를 나오면, 점심때까지 교회 사무실에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합니다. 작정하고 읽을 책을 골라 읽고, 중요한 부분을 요약하다보면 시간이 어느새 점심 때가 되는데, 아내에게서 점심 식사를 하러 오라는 전화가 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들을 때, 무슨 큰일을 한 것처럼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끼며 수고한 표정을 잘 보존해서, 집으로 가서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는데, 음식 준비로 수고한 아내 앞에서 은근히 ‘나도 열심히 잘 하고 왔다’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지지난 주 어느 날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점심을 먹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늘 몸 컨디션이 좀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점심은 알아서 해결할 테니 좀 쉬라고 했더니, 다른 말없이 즉시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점심을 챙겨 주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을 고맙게 생각하는 아내의 말에, 저는 전에 느끼지 못한 애잔함을 느꼈습니다. 교회일이든, 집안일이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든, 무슨 일이든지 용감하게 최선을 다해 몸을 아끼지 않고 척척 잘해 내는 아내였는데, 이제는 몸이 따라가지 않는 피곤함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참 무심한 남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며칠 전에 점심 식탁에서 아내가 무심코 웃으면서 내뱉은 한마디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나는 목사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이고, 사생활이 없는 교회 사모라’고 한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몇 달 전에 작은 복숭아 박스를 하나 사 들고 오면서 하는 말이, ‘오늘 내가 나에게, 너 이 정도는 먹을 자격이 있다며 칭찬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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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세상은 성경대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때’와 ‘뜻’을 잘 분별해야 할 시기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각국의 보호조치는 지구촌 어느 곳이든 암묵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명목으로 권력은 통제사회를 당연시하고, 각종 긴급조치인 행정명령을 연일 쏟아 내고 있는데, 보호를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조치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드리고, 더 강화하고, 더 처벌해서라도 행정명령을 지킬 수 있도록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최선의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모두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있고 똑똑한 지성인이라 할지라도, 나라마다 정부가 바이러스 확진을 막기 위해 가차 없이 도시를 봉쇄하고, 국경을 차단하고, 군대를 동원하는 것을 당연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통제사회는 결국 생산과 소비를 약화시켜, 필연적으로 경제공항을 불러오고, 국가는 무너진 경제침체를 인위적으로 살리기 위해 대규모의 현금을 살포하는 양적완화 조치를 할 것이며, 당장 경제적으로 곤핍한 사람들은 국가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세계 곳곳에서는 안전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세계적인 정치권력의 연합으로 자연스럽게 뭉쳐질 것입니다. 만약 과학자나, 경제학자가 이러난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지 못하면, 비대해진 정치권력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키고 돕는다는 명목으로 전시상황이라고 외치고, 누군가가 어떤 명목으로든 거부하고 통제에 불복종하면 전자팔찌를 채우고, 감옥에 구금하고, 벌금을 부과하고, 심지어 사형을 시키자는 목소리가 당연한 것으로 이어질 것인데, 지금 실제로 이런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큰 재앙이 오면 더 강력한 제한을 강요하는 행정명령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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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고통 중에 맞는 고난주간은 축복입니다.

이번 주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고난 받으신 사랑을 기억하는 고난 주간입니다. 고난이 없었던 평소보다 현재 우리가 겪는 환난과 고통 중에 고난주간을 맞이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고 축복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에 고통이 있어서 두려워하지만, 고난을 지나고 보면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영적 신비가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평안할 때는 우리 자신에 대한 내면이 잘 보이지 않지만, 고난이 있을 때 성령님의 위로로 내면을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을 싫어합니다. 고난은 고통이고 아픔이고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무탈한 것이 좋고, 편안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필 때는 고통이 있고, 열매를 맺을 때도 인간이 모르는 고통이 있다고 식물학자들은 말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지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하시고 고난을 받아 드렸습니다. 고난 속에 고통과 함께 영광이 담겨져 있는 것을 아셨기에, 고난이 변장된 축복임을 아셨기에 담담히 받아드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없었다면 우리의 치유는 없고, 구원도 없고 영생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아 죽으심으로 저주는 축복으로, 사망은 영생으로, 질병은 건강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수치는 영광이 되었고, 가난은 풍요로움이 된 것이며, 천국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삶은 고난입니다. 세상과 반대방향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십자가를 연습하고 훈련받는 여정입니다. 고난 받은 자리에 주님이 함께 계시고, 위로해 주시고, 세상이 느낄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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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관계이기 때문에 예배당 공예배가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은 나와 예수님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이 공동체로 영원한 사랑의 관계로 계시듯이 우리는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지, 꼭 교회에 나가야 합니까?’, ‘혼자서 예배드리면 되지 꼭 예배당에 나가서 예배 드려야 합니까?’, ‘예배만 잘 드리면 되지 꼭 목장에 참석해야 합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교회가 관계라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크리스천은 반드시 다른 성도들과도 관계를 맺는 것이 정상입니다. 혼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나와 예수님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로 불렀습니다. 우리는 관계를 맺도록 새롭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신앙은 관계 안에서만 자라며, 영적성장에는 영적 가족의 지원이 상호간에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공동체를 벗어나 자기를 스스로 고립시키는 사람은 정말 위험한 것입니다. 혼자 성경 내용을 많이 알고, 올바른 교리를 숙지하고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할 때, 협력하는 법, 사랑하는 법, 희생하는 법, 용서하는 법을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전혀 삶으로 배우지 못해 결국은 영적 장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닮는 것은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 맺음을 통해 자아가 점점 깎여 성결과 거룩함이 되는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당의 공예배는 단순한 주일성수라는 종교의식이 아닙니다. 함께하는 친교도 사실은 예배입니다. 공동체가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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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다가올 미래가 좀 일찍 왔을 뿐입니다.

갑자기 이런 일들이 닥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미리 말씀해 놓고 계속 경고해 왔습니다. 전염병과 천재지변 등 환란과 박해는 마지막 때 나타나는 징조 중에 포함되는데, 앞으로 지금보다 더 어려운 때가 올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때는 기다림을 훈련 받을 때입니다. 일상생활에 모든 부분이 ‘멈춤’ 이라는 빨간 신호등에 걸려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때가 되면 다시 노란색 불이 들어오고, 마침내 파란색 불이 들어 와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쉽게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있다는 이유로 신중함 없이 지금의 상태를 무시하고 행동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질병에 조심해야 하고, 사고에 조심해야 하고, 인간관계에 조심해야 하는 것이 보편적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영혼이 구원을 받았지만, 복잡한 삶의 문제나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으로부터 자유케 된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과학자들도 잘 모르는 바이러스에 대해 믿음이 있다고 자유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변화를 받아 드리면서 적응하며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당연히 근거 없는 유언비어는 귀담아 들을 필요 없지만, 전문가들과 행정 결정권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일이 지구촌 어느 한 곳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라는 점을 볼 때, 극복과 퇴치를 위해 제한하는 국가의 권고에 교회도 협력과 협조를 해야 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 폰을 사용하고 있는 첨단의 시대이지만, 예배와 헌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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