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코너

목회자코너

은혜로 받아 드릴 수 있는 것이 축복

어려운 일, 힘든 일, 부정하고 싶은 일들이 있을 때 불편함과 거북함으로 그 일을 받아 드리지 못하는 것은 누구나 예외 없는 본능적 반응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현상이 다가올 때,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나, 어색하고 싫은 대화가 다가오면 거부하고 불편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적 반응입니다. 배타적 경계선이 침범 당하는 느낌을 갖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계선이 짙을수록 내가 독방에 갇히게 되며, 고정된 틀 때문에 수용하지 못하는 자아 중심적 집착에 의한 고립된 삶을 자신 스스로가 만듭니다. 그래서 외롭게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 자아가 강하다는 것은 이미 정신의학적 임상에서 밝혀진 사실입니다.   노출의 두려움, 거절의 두려움, 그리고 상처받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인간관계에 방어막을 쳐서 가면을 쓰고 본 모습의 자신을 감추면, 자신이 모르는 역기능의 행동으로 인간관계가 풍성하지 못하고 정서적 장애에 시달리고 다른 사람을 받아 드리지 못합니다.   받아드림이라는 수용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먼저 용기 있는 자신의 내면을 의도적으로 노출해야 합니다. 부끄러워서, 거절당할까봐서 드러내지 못하면, 사탄의 계략에 말려들어 평생 경직된 경계선의 담을 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합니다.   누구나 실수가 있고, 실패가 있습니다. 깨어지고 부서지고 상처투성인 것이 인간인데, 잘난 척, 아무 일 없는 척, 마냥 좋은 척 하는 것이 오히려 우스운 일입니다. 사람은 실수와 실패의 이야기를 드러내면서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단단해집니다.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수용력은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성도의 이해력은 성령 안에서 긍정의 해석입니다. 용기 있게 실수와 실패를 드러내면, 사탄이 지어놓은 마음속에 거짓의 집은 깨어지고 사라집니다. 감추는 것이 많으면 허세를 부리고 과장하는 언행으로 오히려 부정적인 성향만 키웁니다.   목장에서 다른 사람을 있는 그 모습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려면 ...
Read More

경건 관련 금욕에 대한 입장

술을 마시는 것이 죄냐 죄가 아니냐의 입장에 대해 딱 구분하여 죄다 아니다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예수님께서도 술을 마셨기 때문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포도즙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예외 없이 같이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그 장소에서 예수님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고정관념을 주장하는 잘못된 성경해석입니다. 예수님이 포도주를 마셨다고 하면, 술을 마시는 그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포도주는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많이 마시면 취할 수 있는 포도주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포도주는 일반 음료였고 오늘날 서양사회에서 식사 때와 같이 와인이나 맥주 한 잔을 곁들여 마시는 것은 소화를 돕고 음식 맛을 더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술을 마셔도 된다는 뜻이냐고 의견을 묻는다면, No! 라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술은 중독성이 있고 한국 사람들의 경우에는 술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고, 술 때문에 영적생활이 방해되고 대부분의 실수와 폭력과 가정생활에, 인간관계에 문제 발생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믿음이 성숙한 부부가 특별한 기념일에 축하하며 와인 한 잔을 음식과 함께 마시는 것을 죄라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혹은 교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금해야 합니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이며 외식하는 것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술을 끊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함이고,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건의 능력이 ...
Read More

섬기는 것도 영적 무기입니다.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에게 이 땅에서 사용할 수 있는 두 종류의 무기들을 주셨습니다. 사탄의 세력과 싸울 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성경 말씀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코자 할 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섬김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무기를 잘 구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섬겨야 될 자리에서 성경 말씀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정죄와 판단이 됩니다.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는 말씀이 오히려 그 영혼에 말씀이 걸림돌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성경 말씀을 사용해야 할 자리에서 계속 섬김만 하면 사교적 관계만 될 뿐 영적인 열매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섬김보다는 과감하고 담대하게 성경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섬김이 무기가 되려면 영적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섬김이라는 무기를 사용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을 얻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섬김에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섬김이 능력이 되기 위해서는 의무감에서 섬길 것이 아니라 정성으로 섬겨야 합니다. 억지로 의무적으로 섬기면 영적무기가 되지 않고, 오히려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금방 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음 가운데 한 영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진심으로 희생하면서 기쁨으로 섬기게 되면 열매는 맺히게 됩니다. 섬김이 부담스럽고 어려우신 분들은 신앙생활의 기초를 다시 세워나가야 합니다. 먼저 내 마음에 구원에 감격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이 있다면 섬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목장모임에서 서로 섬기는 것을 ...
Read More

신앙성장은 훈련으로 가능합니다.

신앙생활은 행복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행복하다는 고백을 할 수 있을 때가 신앙생활을 정상으로 하고 있는 때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신앙이 성장할 때 주어집니다.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 어떤 직분과 위치에 있는가, 무엇을 아는가 하는 것이 신앙 성숙의 표시인 것으로 오해 하거나 속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표시는 삶의 변화와 성장입니다. 삶의 변화가 있을 때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 삶의 변화의 과정이 신앙성장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신앙성장은 자연히 이루어 지지 않고 훈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설교에 은혜를 받는데, 훈련을 받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성장은 교회에 나오고, 좋은 예배드리고, 성경공부를 한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집회든지 프로그램들은 일시적인 도움을 주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는 신앙성장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신앙성장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인 저의 역할은 교회 식구들이 신앙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교회 안에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각 사람을 신앙성장의 자리에 들어오도록 동기와 도전을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신앙성장의 환경에 들어와서 신앙성장의 길을 걷는 것은 교회 식구들의 선택입니다. 신앙성장은 매일 매일의 삶에서 스스로 훈련을 감당할 때 이루어지는 결과입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아 신앙생활이 힘들고 행복하지 못한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관계나 신앙생활의 어려움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성숙하면 관계나 어려운 환경이 문제가 되지 ...
Read More

신앙이 성숙할 때 생기는 변화

누구나 처음 하나님을 찾을 때 그 동기는 ‘이기적’입니다. 건강, 사업, 자녀, 직장, 배우자, 인간관계 등의 도움을 얻고자 하나님 앞으로 나아옵니다. 이때는 성경도 문제해결 중심 복 받는 관심과 시각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축복, 기도 응답 등도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중심으로 이해합니다. 누구나 시작은 그렇습니다. 육적이며 어린 아이 유아적 신앙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은 점점 달라집니다. 하나님 안에서 신앙의 맛을 알아가면서 변화와 성숙을 경험하며 희생과 헌신의 기쁨을 맛보는 사람들은 성경을 선교적 관점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읽게 됩니다. 어느 교회이든지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섞여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들이 교회의 영성을 주도하느냐에 따라 그 교회의 분위기와 교회됨의 모습은 차이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변화를 경험하면서 말씀을 아는 단계에서, 적용하여 순종을 연습하고 훈련하면서 점점 생각과 관심은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먼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와 내 식구, 내 직장에만 머물던 관심이 이웃으로 넓어지고, ‘지금까지 받은 은혜만 해도 과분합니다. 이제는 받은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하는 고백들이 있게 될 때, 교회는 놀랍도록 성숙해지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맛보면서 신앙이 ‘어린아이 수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비전을 공유한 ‘그리스도의 군사 수준’으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변화는 영혼구원이 신앙생활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안에서 쉽고 편하고 즐거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바람이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영혼을 섬기며 복음을 위해 모욕을 받아도 감사한 ...
Read More

안 해서 못하지 해보면 할 수 있습니다.

부자들이 즐겨 쓰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입니다. 맞는 말이고, 옳습니다. 신앙생활에도 공짜가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 받는 것 이외에 변화와 응답과 기쁨에는 공짜가 없고,크리스천으로써 예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헌신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어렵다고 힘들다고 생각하고 안 해서 못하지 해보면 할 수 있습니다. 해 볼 때 성령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기쁨과 보람은 교회 공동체가 하기 나름입니다. 해 보지 않고서는 보람이나 기쁨이나 성취감으로 인한 행복을 맛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인격 변화는 자동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품과 성향이라고 할 수 있는 인격과 신앙 성장과 성숙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말씀대로 해 봐야 됩니다.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 받고, 목장에서 함께 존중하며 협력하며 나눔과 섬김을 실천해 봐야 가능합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한번 해 보겠다는 도전정신과 강인한 개척정신으로 해 볼 때 놀라운 성취를 경험하게 됩니다. 신앙훈련도 시도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편하고 어색해도 계속 해 보면 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연습하고 훈련한 말씀적용 모임을 [목장]이라고 부르고, 매주 친교 후에 목장모임에서, 말씀을 적용하고, 삶을 나누고, 앎을 삶으로 살아내는 연습과 훈련을 할 것입니다. 이 목장모임을 통해 섬김과 교제를 나누면서 서로가 격려하고 응원하며 삶을 세워 나갈 때 신앙생활의 기본기가 세워질 수 있고, 주변에 믿지 않는 영혼을 구원 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
Read More

말씀적용 나눔 그룹 인도자 훈련

우리 교회가 올해 중점을 두고 훈련할 부분은, 말씀적용 나눔 소그룹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매주 주일 친교 시간 말미에 약간의 연습을 해 왔습니다. 주일 설교 중에 나에게 와 닫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입술로 고백하고 적용하는 표현 훈련에 동참했습니다. 그룹 인도자는 매주 토요일 새벽기도 후에 친교를 나누고 30분 안팎으로 훈련을 하게 됩니다.  우리교회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성경적 앎이 신앙적 삶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고, 고백과 적용을 통해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경험하기 위함입니다. 예배만 드리고 난 뒤에 그냥 흩어지면 한 주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점검이 없기 때문에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생활이 되고, 말씀으로 살아 본 삶의 내용이 없기 때문에 기쁨과 감동과 변화가 없으로 신앙생활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주일 친교 후에 말씀적용 나눔 소그룹 모임을 3~4명씩 구성하여 교육관과 도서관 등에 모여서, 그룹 인도자가 훈련 받은 대로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주일에 친교 후 설거지는 이 그룹모임이 다 끝난 후에 순서별로 정해진 그룹이 함께 설거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그룹 모임 전에 친교 설거지를 하게 되면 모임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훈련 분위기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 해 본 것을 새롭게 시작하면 어색함과 불편함이 따릅니다. 그만큼 신앙생활이 익숙하고 습관적으로 편해 진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종교생활은 쉽고, 신앙생활은 불편함한 것입니다.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건강한 증거임을 알때 믿음이 성장하고 성품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체득할 것입니다. 이 그룹 ...
Read More

게으름과 싸워야 신앙생활 승리합니다.

흔히 신앙생활의 대적을 사탄이이라고 하지만 더 큰 대적은 자기 자신의 게으름의 습관입니다. 사람들은 걸핏하면 사탄을 핑계대지만, 거룩한 삶의 은밀한 대적이 게으름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게으름의 특징은 계속 미루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는데, 차일피일 계속 미루면서 해야 한다고 계속 말만 하고, 생각만 하고,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영적 질병입니다. 자신의 인생과 신앙생활의 가장 큰 방해물 중의 하나가 게으름입니다. 이 게으름이 인생을 망치고, 신앙생활을 실패하게 만듭니다. 게으른 사람은 대부분 교만하고, 자기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낫게 여깁니다. 잠언26장 16절의 말씀에는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긴다’고 했습니다. 게으름은 자기 자신을 모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정작 자신이 게으르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있고, 항상 자기변명을 입에 달고 살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건강하지 못합니다. 분명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대해 조금씩 소홀히 하다 보면 그것이 점점 자라서 생활 태도가 됩니다. 결국에는 게으른 삶의 태도가 성품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게으름의 습관의 고리를 끊지 못하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마땅히 하여야 할일을 미루거나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치명적인 자기약점이 게으름이 될 수 있습니다. 게으름의 악습관 고리를 끊으려면 먼저 철저히 자기관리를 도울 수 있는 리더를 정해야 하고, 리더의 지시에 완전히 순종하고 훈련 받는 길 밖에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맡겨진 사역에 대하여, 잘 하고 ...
Read More

주님의 교회는 위기가 없습니다.

소위 신앙이 좀 깊다는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교회의 위기에 대해 말하면서 앞으로 절망적인 교회의 미래를 내다봅니다. 기독교인들이 줄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걱정합니다. 유럽의 교회가 한 때 융성했지만, 지금은 그 예배당에 결혼식이나 관광객들로 붐비고, 심지어 술집이 예배당 건물을 사서 개조해서 장사를 한다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미국이나 한국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에 위기가 올 것이라는 전망을 합니다. 통계자료를 인용하기도 합니다. 사실 걱정입니다. 교회에 주일학교나 청소년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회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으로 전도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교회를 한 번도 다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나 타종교를 믿어 온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는 일이 아주 드문 현상입니다. 교회가 위기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총체적으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 부흥하는 교회가 있고, 지금도 성공적인 교회를 세워가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유럽에서 교회가 성장하는 곳이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종교학 교수 하비 콕스는 1965년에 [세속도시]라는 책을 저술하면서, 세속사회에는 결국 종교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2010년에 [종교의 미래]라는 책을 다시 쓰면서 자신의 예상이 틀렸고, 종교는 놀랍게 부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루이 14세 이후 프랑스에서는 기독교가 사라졌다고 했지만, 요즘 프랑스에는 매주 3000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가 생겼다고 합니다. 남미도 아프리카도, 중앙아시아도 부흥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사람들은 교회를 떠날 것이고, 교회는 문을 닫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오히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
Read More

감정적 달콤함의 결핍은 당연함

우리는 이성을 넘어선 감정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맞고 틀린 것을 사실관계가 아니라 감정이 기준이 되어 결정합니다. 느끼는 감정에 맞으면 틀린 것도 옳고, 감정에 맞지 않으면 맞는 것도 틀린 것이 되는 세상적 인식의 조류에 휩쓸려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주관적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달콤함이나 기쁨이라는 감정적 결핍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달콤함이라는 감정의 기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에 익숙해져서 거짓을 옳음으로 인정하는 과오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냥 감정적으로 좋아야만 한다면 아픔과 슬픔 속에서는 진리를 따라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성품은 사랑이 많고 관대한 모습도 있지만, 어둠과 결핍과 황폐함 가운데 거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쁨을 주시고 위로도 주시지만, 아픔을 허용하시고,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메마른 감정 속에서 몸부림치는 영혼을 가까이 만나 주십니다.   감정의 표현인 기분은 일시적이고 더 강한 감정 상태를 요구합니다. 때문에 기분대로 무슨 일을 시작하고, 기분대로 사람을 대하면 나를 기쁘게 하는 이기심과 자만심만 살찌우게 됩니다. 때때로 좋으신 하나님을 내가 그리워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기쁨만을 원하는 나의 감정과 자아라는 것을 모르고 속을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한 자는 기분 좋은 감정의 상태는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상태가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감정적 달콤함의 결핍은 사모하는 영을 위한 말씀의 흡착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의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감정만을 느끼기 원하는 자의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아주 사소한 일에 쉽게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은 바람이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