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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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가 있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해서 행복한 것입니다. 올해 추수감사 주일을 두 주 앞에 두고 우리 성도님들 모두 감사할 제목들을 챙겨보고 함께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삶의 자리가 어려웠던 분들도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여의기도 하고, 질병의 고통을 지나기도 하고,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은 분들도 있을 것이고, 건강 때문에 힘들었던 분들도 있을 것이고, 자녀들의 문제로 마음 아픈 시간을 보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삶에는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이 같이 오게 마련입니다.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그 안에 좋은 것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숨겨진 좋은 것을 찾아내서 감사하는 것이 크리스천입니다. 행복은 환경이나 조건에 있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감사거리를 찾아서 나눌 때 행복한 부부가 되며, 바쁜 하루의 삶에서도 감사거리를 찾아서 나눌 때 행복한 가정이 되고, 일상적인 삶의 사소한 것에 감사를 찾아내면 점점 감사할 것들이 마음에 느껴지게 됩니다. 처음에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하다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알아 갈수도록 어려운 모든 일들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게 되면서, 좋지 않은 일들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숙하게 되고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감사한 일이나 기도 응답은 그냥 지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감사의 제목을 적어 감사헌금을 올려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감사하며 살 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느껴지고 더 깨달아질 수 있게 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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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에게,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하고 물으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하는 분들이 적은 이유는, 제자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제자가 되려면 어떤 특별한 성경공부를 해야 하고, 믿음이 강해야 하고, 선교사나 목사처럼 신학을 해야 하고, 사역자가 되어 희생을 해야만 제자인 줄 압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모두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문제는 내가 제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희생과 헌신해야 할 부분이 부담스럽고, 신앙생활이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내가 제자가 될까봐 오히려 염려가 되어, 적당히 믿으려고 하는데,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이기에 제자훈련이 필요합니다. 제자가 제자훈련을 받는 것은, 좀 더 제자다운 삶을 살도록 믿음의 실력을 배양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은 목장모임에서 이루어집니다. 비뚤어진 성격이 교정되는 것, 나쁜 버릇이 고쳐지는 것, 하나님 말씀이 금지하는 죄악을 뿌리 뽑는 것,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것,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자꾸 걸려 넘어지는 것, 등은 혼자의 노력으로 절대 해결 될 문제가 아닙니다. 누군가가 함께 해야 하고, 목장 모임 중에 발견하고 스스로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만 다니고, 제자훈련 없이 가만히 있는데 사랑이 막 흘러넘치고, 저절로 진실한 사람이 되고, 어느 날 갑자기 성격이 좋아지고, 부담스러운 일을 맡겨도 기쁨이 충만해서 뚝딱 해내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훈련을 받아야 할 수 있습니다. 목장에서 훈련을 통해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진실하게 사는 방법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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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성품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좋은 성품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 평생 인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성품이 없으면 아무리 능력이나 재능이 있어도 어떤 한계에 부닥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과 신앙을 실패하고 무너지게 만드는 것은 많은 경우에 잘못된 성품에서 비롯되는 것을 봅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성품입니다. 어떤 능력이나 특별한 재능은 한 사람의 삶을 어느 정도 까지는 세워 줍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성공과 실패 사이에 영향을 주는 것은 성품입니다. 좋은 성품은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주어지는 본성이 아닙니다. 좋은 성품은 학습되고, 개발되는 것입니다. 본성적으로 이기적인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서는 훈련과 습관 교육이 필요합니다. 겸손함, 순수함, 따뜻함, 성실함, 긍정적인 자세, 책임감 같은 좋은 성품은 가정, 사회생활, 신앙생활 등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영향을 끼칩니다. 좋은 성품이 좋은 배우자와 좋은 부모가 되게 하고,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좋은 신앙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성품은 오랜 시간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성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거나 바꾸어 지지 않습니다. 성품은 일생 동안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변화 되어 집니다. 그래서 좋은 성품을 갖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일생을 거쳐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좋은 성품을 키우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긍정적인 사고를 품고 이해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해야 하고, 불편하고 어색하고 힘들어도 견디는 훈련을 해야 좋은 성품으로 길들여져 갑니다. 성품은 내면적인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꾸준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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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 모임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의 출생은 순간이지만, 성장은 평생 동안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이루어집니다. 결혼 서약은 순간에 이루어지지만 그러나 좋은 부부는 희생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평생의 과정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것은 순간이지만 예수님 안에서 성장 하는 것은 천국 갈 때까지 이루어지는 과정 입니다. 어떤 경우든 성장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아픔이 있는 ‘성장통’을 통해 성장되어지고, 성장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단계별 여정을 지나면서 고통과 실패를 통해서 연단을 받으면서 내면의 성장을 하게 됩니다. 부부는 차이와 다름으로 인한 갈등을 인내와 사랑으로 극복해 가면서 좋은 부부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신앙의 성장도 교회 나오고 예배를 드린다고 저절로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다양한 문제를 놓고 영적씨름을 하다 보면, 성품과 인격이 조금씩 변화되고, 원만해지면서 성장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적 지식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보고 배우고, 목장에서 작은 실천을 통해서 좋은 습관을 쌓아가면서 내면이 성장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성장 시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세워주는 것은 무엇을 배움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장은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음을 통해서 조금씩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고, 사랑해 주고,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어 가게 됩니다. 목장은 엉성한 것 같지만 파워풀 한 곳입니다. 목장을 통해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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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성령이 이끌어 가십니다.

A. W. 토저(Tozer) 목사님의 저서 [믿음에 타협은 없다]에서 주님의 교회에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지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머리에 지식은 많지만 영적 생활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지도자들이 교회를 이끌고, 전문가를 자처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일에 전문가가 아닐 수 있다. 초대교회의 신앙운동에서 많이 나타났던 하나님을 향한 압도적 경외감이 없다면, 성령의 능력을 부인하고 판에 박힌 신앙생활을 하다가 본의 아니게 진리를 파괴할 수 있다. 직분자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섬김이 체질화 되지 않으면, 특권의식에 사로잡히기 쉽다. 성령을 구하지 않고, 성령을 덧입지 않으면 의무와 책임은 도외시하고 사람 앞에 군림하면서,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왜 안하느냐며 비판과 판단을 일삼을 수 있으니 매우 조심해야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높고 낮음이 없었고, 오히려 감독, 목사, 장로, 집사를 비롯한 직분자들이 성도를 섬기는 일에 본을 보이고, 교회에 자원하여 물질로 헌신하고 기도에 깨어 있었고, 자기의 위치를 알고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들을 통해 일하셨다. 직분자들은 영적 무기력을 조심해야 한다. 은밀한 개인적인 사생활이 없어야 한다. 삶이 오픈 되어야 교회를 영적 위험에서 막아 낼 수 있다. 기도로 성령을 의지하지 않으면 허약한 종교 전문가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마귀의 노리개 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교회를 이끌고 나가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교회를 통해 각 세대마다 자신의 일을 하시기 위해 성령께서는 오순절에 교회를 탄생시키고, 지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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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존중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교회가 오늘 52년 생일을 맞았습니다. 한 교회가 50여년을 지나 온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눈에 보이지 않는 수고의 손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제 반세기를 지나 새로운 50년을 바라보면서 우리교회의 목적인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 계속해서 존중의 영성이 깊이 뿌리 내리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합니다. 좋은 교회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라기보다 사랑이 많은 교회라는 사실을 누구나 공감합니다. 사랑이 많다는 것은 서로 존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존중한다는 것은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존중한다는 것은 친밀하면서도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경멸하지 않고, 세워주고 좋게 말하고, 부족한 부분보다 장점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나의 주장이 아무리 옳아도 상대방의 주장을 귀하게 여기고 과감히 나의 옳음을 내려놓고 받아 주는 것이 존중입니다. 당장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은혜로 덮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 존중하는 관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존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며 말씀을 존중히 여김으로 순종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항상 예수님을 높여 주시며 증언해 주셨습니다. 이 존중의 관계는 우리를 향해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내가 다른 지체를 존중하려면 자기존중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자기존중이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정성스럽게 대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나 잘못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복음 안에서 긍정적으로 받아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지체의 부족한 점이나 잘못을 지적하고 비난하기보다 이해와 포용을 통해 존중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사랑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좋은 점을 인정해 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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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국 가는 죄인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이유는, 낳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였기 때문에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사탄의 꼬임으로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선악과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인간인 것을 구별해 놓은 것인데,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사탄의 꼬임으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에 죄의 씨를 갖고 있어서 행동으로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이미 죄인이니까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죄를 가지고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 맺을 수 없으니 결국 죄의 삯으로 결국 사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인 것입니다. 죄의 결과로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인간을 그대로 죽게 할 수 없어서 그 죄를 없앨 수 있는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영생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죄인인 인간을 대신해서 죄의 삯인 죽음을 당하게 하셨는데, 그 사실을 믿고 마음에 예수님을 모셔 드리는 사람들에게는 죄 없음을 인정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지 않으시면 누구도 그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인격적으로 도덕과 윤리적으로 훌륭한 사람도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죄인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내가 믿거나 말거나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교회라는 곳은 자기가 착한 사람,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의인은 교회 올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공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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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기도하면 복음 전할 사람이 보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육안이 밝으면, 영적 현상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예배나 전도나 성경공부나 그 어떤 영적인 일을 할 때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도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은, 진심으로 기도하지 않고,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전도할 사람이 옆에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전도할 사람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먼저 전도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마귀가 그런 생각을 심어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전도하기 힘든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지속적으로 기도할 때, 그 사람의 삶 속에 들어가 역사하시는 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입니다. 차갑고 냉소적이고, 의심 많고, 무관심과 적대감을 나타내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핑계와 약속 안 지키는 것은 당연합니다. 영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을 위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도로 시작해야 합니다. 밥 사주고, 돕고, 섬기는 것은 두 번째입니다. 기도 없이 그런 섬김은 영혼구원에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실컷 해 주고 상처 받고 후회할 일들만 생깁니다. 기도가 전도하는 것 자체보다 더 중요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영적 능력이 작동할 때 됩니다. 그 능력은 우리의 방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기도는 그 능력이 역사하시도록 하는 통로입니다. 영혼구원을 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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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가 참 외롭게 보여야 합니다.

사람은 각자의 내면과 삶 한가운데에서 잠재울 수 없는 긴장과 아픔과 만족을 모르는 그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의 근원은 원초적 외로움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발전하고 살기가 좋아져도 감추어진 이 외로움의 얼굴은 속일 수 없습니다. 복음 안에서 깊이 있게 보면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다만 상처받고 아파하며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외롭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가면을 쓰고 숨기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이 생기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는 불안을 낳습니다. 불안은 소외되거나 소원해지는 체험보다 더 좌절하게 만들고 틀림없이 어느 특정한 곳에 중독되게 합니다. 자신이나 남에게 감추고 인식하지 못하는 그 외로움에서 도피하기 위함입니다. 술이나 마약이나 포르노나 스포츠나 인터넷에 중독 된 사람은 자신이 외롭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해결 되지 않는 죄가 외로움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상태는, 내면의 깊은 곳에 하나님의 부름에 대해 저항하고 외면하면서, 불안감, 소외감, 편집증, 상실감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공허감을 느끼며 외로워하면서도 대개는 무시하거나 침묵합니다. 때로는 필요 이상 남에게 환심을 사려고 하고, 지나친 소유욕이나 친밀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만, 만족감을 느끼지 못해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냉소적인 사람이 된 그 원인이 외로움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어떤 불안과 만족할 줄 모르는 본성은 ‘온전함으로 돌아가려는 거룩한 욕구’입니다. 사람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본인 자신과의 관계를 적절히 맺지 못하고, 다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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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예배 자리 한 번 옮겨 보면 은혜 받습니다.

사람은 생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몸의 현재 위치이며, 지금 앉는 자리입니다. 생각은 마음 안에서 이리 저리 맴 돌다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앉는 자리는 몸을 그곳에 끌어당기는 혼자만 아는 무의식의 흔적을 남깁니다. 평생 정해진 익숙한 고정석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몸이 동일한 자리를 무심코 찾아가게 됩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처음 나올 때 앉은 그 자리를 평생 예배의 자리로 삼는 것을 큰 자랑과 좋은 믿음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쁜 것이 아니라 좋습니다. 주일 예배를 하나님 앞에 잘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익숙한 자리를 한 번쯤은 벗어나 다른 자리에 앉아 예배드려 보는 것도 좋습니다. 작은 변화가 큰 은혜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어디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가 하는 것이 예배를 잘 드리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나, 그림을 그릴 때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회에 참석할 때나, 운동 경기를 관람할 때나, 강의실에서 공부를 할 때에 그 사람이 앉는 자리에 따라 감동이나, 느낌이나, 반응하는 자세와 태도에 깊은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자리 값이 각각 다릅니다. 오래 앉았다가 다른 자리를 찾아 앉으려면 불편합니다. 그 불편함은 몸의 어색함으로 나타나는데, 그만큼 무의식적인 고정관념에 익숙해졌고, 그곳에서 조금 벗어나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따라가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설명하기는 어렵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쉽게 나타나는 것은 몸이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강박과 의존과 두려움은 마음의 생각에서 시작되지만, 고정된 몸의 자세와 위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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