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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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네가 옳다’라는 이해의 마음자세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는 그 내면에는 이유와 사연이 있습니다. 내가 그 행동에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본인이 느끼고 드러내는 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받아 주는 것이 공감이고, 경청의 자세입니다. 나의 생각이 틀릴 수가 있기에 겸손히 수용하고 수렴하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사람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듯이, 너와 나는 다름과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는 것이 소박하지만 위대한 성찰입니다. 상처 입은 사람은 감정과 고통을 중심으로 인식하고 반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을 조롱하거나 비아냥거리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고, 영혼이 길가 밭과 같이 딱딱하게 만들 뿐입니다.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짐작은 금물입니다. 나도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니 배우는 자세로 살아야 그 고통을 토해내고 호소하는 상대의 말을 신중하고도 겸허하게 받아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지식이 있어서 자격증을 소유한 자가 사람을 치유하는 것 같아도, 이론이 아닌 실생활에서 깊은 관심과 배려와 존중을 해 주면, 그 시간에 감정에 아픔을 느끼는 사람을 살리는 치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영혼 한 사람을 귀하게 봐야 합니다. 사랑만 해야 합니다. 무조건 사랑해야 내가 살고 그 사람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모르지만 이유가 있으니  [그렇지! 네가 옳다.] 이렇게 생각하고 돌봄의 자세가 되는 것은, [내가 네 편이란다] 하는 적극적 감정동의입니다.  목장에서는 말하기보다 듣기 훈련을 해야 하고, 옳고 그름의 사실관계보다 감정을 포옹하는 연습을 해야 하며,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신앙생태계를 조성해야 합니다.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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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죽음을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사람은 언젠가 죽음의 시간이 옵니다. 보통 죽음이 임박하기 전까지는 죽음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주는 죽음을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고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두려움은 죽음 이후 자신의 영혼이 가야 할 곳이 어딘지에 대해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은 몸은 죄로 인해 죽겠지만 거듭난 영은 죽음을 넘어 영생하는 천국에 들어가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영벌이 있는 지옥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존재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늘 밤에 죽어도 천국 갈 확신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음의 실체를 알게 되면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며,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의 보혈로 죄 용서를 받고, 죽어도 천국에서 눈을 뜰 것을 확신하는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 이름을 부르며 담대히 죽음을 대면할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젊은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죽음이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죽음은 예측할 수 없을 때 오기 마련입니다. 나이든 사람이 일찍 죽는 다는 착각을 하지만, 젊은 사람들도 죽음 앞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젊은 사람도 죽음은 준비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그리스도인은 매일 죽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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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빨라서 일을 망치는 경우가 있고, 늦어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속도보다 방향입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가 빠를수록 위험합니다. 그런 까닭에 가끔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A. W. 토저 목사님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방향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쁨입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했는데 예상 밖으로 거북이가 이겼습니다. 토끼는 일찌감치 앞으로 달려 나가서 자만하여 쉬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졌고, 거북이는 느린 걸음이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가서 이겼습니다. 꾸준함이나 성실성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최근에 토끼가 지고 거북이가 이긴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목표를 바라보는 시선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토끼가 진 이유는 거북이를 의식하고 바라보았기 때문이고, 거북이가 이긴 것은 끝까지 목표를 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는, 그 원인이 나와 경쟁하는 사람이나 주변 환경에 눈을 돌리다가 본래의 목표를 잊어버리거나 방향감각을 잃어버렸을 때입니다. 사울의 실패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다윗에게 시선의 방향을 고정시켰기 때문이며,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에게서 시선을 돌려 하나님께 시선의 방향을 고정시켰기 때문에 존귀한 삶을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의 기본과 기초를 끝까지 붙잡아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목표를 끝까지 붙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은 왜 하고, 공부는 왜 하고, 신앙생활은 왜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수록 우리는 곁길로 갈 확률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가는 길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마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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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삶에 악령을 물리치려면

교회를 다녀도 악령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민감하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악령은 믿는 사람에게도 역사할 수 있습니다. 악령의 역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에 분열을 일으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민교회 분열의 원인을 사람에게 두고 있는 것은 악령의 개입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악령의 주특기는 거짓말입니다. 마귀는 거짓말 하는 영(요8:44)인데,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거나, 이기적인 사람과 상처가 많은 사람들의 혼에 들어가 지정의를 조작하여 거짓으로 갈등과 불신과 분열을 충동하도록 합니다. 악령은 거짓말을 통하여 교인들 간에 오해가 생기게 만들고, 교인들과 목회자간에 신뢰의 벽을 허물고 관계에 쐐기를 박는 일들을 하여 교회에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지 못하고,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습관에 중독증이 깊어지면 악령이 개입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드러내지 않고 감추면 감출수록 악령은 점점 더 역사하고, 그 중독성의 상태에 노예가 되어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부끄럽다고 감추고서는 절대 그 악령에게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숨기지 말고 공개하여 악령이 역사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앤 후에 주위 분들의 기도와 도움을 청하여야 합니다. 좋았던 관계가 사소한 일로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생길 때 악령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악령이 거짓말을 하게 하거나, 거짓말을 사실로 믿게 할 때 오해가 생겨서 관계가 깨어지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니 불편하다고 상대방을 피하거나, 뒤에서 불평하지 말고 얼굴을 맞대고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 합니다. 푸는 방법은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언젠가 풀리겠지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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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기를 고립시키지 말아야 할 이유

인간관계를 제한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몇 몇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사귀며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기 성장과 인격의 성숙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이기적 자기만족을 위해 특정한 관계만 맺기 때문에 스스로를 항상 고립시키게 됩니다. 고립은 신앙적 삶이 아닙니다. 인간관계의 폭을 많이 넓히면 자신에 대해 서서히 알게 됩니다. 나의 약점과 강점과 성격과 성품과 경향성과 정직성과 성실성과 진정성을 조금씩 확인할 수 있습니다.제한된 관계만 맺고 살면 닫힌 의식으로 인해 자기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상처를 입을까봐 두려워서 관계의 지경을 넓히지 못한다는 부정적 염려를 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상처로 성장하고 실패로 성숙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아픔과 상처가 있는 사람일수록 더 관계의 지경을 넓혀야 치유와 회복이 됩니다. 고립과 관련된 부정적 감정은 그 어떤 방법으로 치유할 수 없습니다. 복음 안에서 용서 받았음을 확실히 믿는다면, 좌절과 절망 어색함과 불편함을 의지적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잠언 18장 1절에는‘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고,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을 적대시한다’고 그 마음을 갈파합니다. 자신을 고립시키거나 제한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주님의 교회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격려와 사랑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홀로 지내는 개별화는 세상의 문화와 사탄의 계략입니다. 표정이 밝고 건강한 자아상으로 어느 곳에서든지 소속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돕고 사랑할 수 있는 내공이 형성 되어 마음에 사귐의 근육이 생긴 사람입니다. 행복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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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하면 복 받습니다.

우리 예본교회 영성은 존중입니다. 존중은 관계적 단어입니다. 상호간에 관계를 맺을 때 차이와 다름이 있음을 전제로 하고 나와 상대방 사이에 주님이 서 계신을 의식하고 순전히 받아 주는 마음의 자세와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존중은 먼저 하나님을 존중해야(삼상2:30) 존중히 여김을 받고,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존중을 심으면 존중을 받게 됩니다. 내가 경멸은 심으면 경멸을 낳습니다. 존중의 원리는 예수님의 황금률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에게 존중을 받고 싶다면 먼저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합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생의 모든 문제는 관계의 문제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관계에서 결정됩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관계를 잘 맺는 법을 지속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대부분의 관계의 문제는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존중한다는 것은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무례히 행동하면 하나님 앞에서 존중 받지 못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존중 받는 자가 되려면,반드시 다른 사람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존중은 하나님을 경외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존중은 축복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사람들을 존중히 여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 안에 복을 감추어 놓고 존중으로 그 복을 차지하게 하십니다. 존중하면 보상이 따라옵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목장에서 그 어느 공동체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길은 서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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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와 목사가 서로 선물이 된 우리교회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천국 가족이 되고, 하나님의 식구가 된 우리 예본 교회라면, 신앙생활이 행복해야 합니다. 교회로 모일 때 행복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이고 성도와 목사는 서로 좋은 선물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우리 교회 식구들은 얼굴 표정이 가식적이지 않고 편안하고 굳어 있지 않습니다. 늘 밝게 웃는 모습에서 나오는 신앙 자세와 태도가 순전합니다. 저는 성도님들이 부족한 장목사를 좋아하고 믿고 따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고맙고 감사하기도 하지만, 제가 자랑할 것이 없고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때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이 되고 쑥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하루에 식사 때마다 성도님들을 위해 소리 내서 기도합니다. 직장과 가정과 학업과 부부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물론 저의 아내와 함께 식사할 때, 가정에서 식기도 할 때 333기도 하시는 분들을 포함해서 잊지 않고 기도합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은, 제가 성도님들께 선물이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시카고 한인 교역자회를 섬기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목사가 성도님들께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목사가 목사를 대할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맡겨 준 사역은 어떻게 함께 협력해야 하는지를 배우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목사님들이 저의 요청에 따라주고 협력해 주는 것을 보면서, 저에게 사람을 움직이는 어떤 특별한 리더십이 있다고 칭찬을 합니다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고 제가 솔선수범하고 진실하게 최선을 다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사인 제가 먼저 교회를 섬기든, 교계 목회자들을 섬기든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제가 해야 할 몫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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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은 거룩한 놀이가 필요합니다.

저는 놀이가 불편한 사람이었습니다. 체질적으로 논다는 것이 잘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체적으로도 운동신경이 둔한 편이었고, 조용히 혼자 사색하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노는 사람을 보면 좋지 않게 보였고, 성실하게 무엇인가 해야 안정감을 누리는 유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에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인간에게 있어서 놀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중압감과 압박감 그리고 의무감과 책임감이 너무 지나칠 때는 적절한 놀이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놀이가 새로운 창조와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어서 신앙생활에도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인간은 놀이를 통해 근육을 발달시킬 뿐 아니라, 뇌의 지능도 발달된다고 합니다. 사회성 개발과 지적 발달에 놀이는 필수적입니다. 놀지 못하는 것은 심령에 불안과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고, 열등감, 비교의식, 고립감에 잡혀 있는 사람의 특징은 놀지 못한다고 합니다. 남과 어울리는 것이 불편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신경이 쓰여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반복적인 긴장이 따릅니다. 간간히 놀이를 즐길 줄 알아야 창조적 상상력이 창조되고, 의식의 한바탕에 새로운 신비의 원천이 깨어납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생활은 그 자체가 성스러운 놀이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하는 놀이와 같습니다. 사실 인간의 주된 관심은 모두 신비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언어로는 완전히 표현할 수 없고, 언어 이전의 문제이기 때문에, 영적세계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성도는 항상 불편하고 긴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혼자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은 위험합니다.  제가 걱정이 되는 것은 지금 세대들이 놀이 없이 자랐기 때문에, 폭력성, 무관심, 냉소적이며 이기적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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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 대한 바른 설명

성경에는 하늘나라에 대한 말씀이 매우 구체적입니다. 세 종류의 하늘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첫째 하늘은 지구 대기권입니다. 이사야서 55장 9~10절에 나오는, 파랗게 보이는 창공인데, 비와 눈을 내리는 하늘입니다. 둘째 하늘은 사탄이 활동하는 영역인 공중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2장 2절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사탄이라고 했는데, 6장 12절에 하늘에 있는 악한 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악령의 움직임에 대해 사실적으로 설명한 곳이 많습니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마태복음6장 9절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할 때 그 하늘을 의미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 바울은 삼층 하늘에 올라가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한 바로 그곳입니다. 첫째 하늘은 세상의 왕국이 건설되는 이 세상입니다. 여기에 선한 천사와 사탄과 그를 따르는 악한 영들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이루어집니다. 둘째 하늘은 하나님을 대적한 사탄과 그를 따르던 악한 영들이 셋째 하늘에서 쫓겨나서 거주하는데,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세상 나라(왕국)들을 누르며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과 사탄의 하수인 악령들 사이에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셋째 하늘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이 거하는 곳입니다. 천사들은 때때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을 왕래하며 활동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력들이 모두 추방되었기 때문에 셋째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첫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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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받아 드릴 수 있는 것이 축복

어려운 일, 힘든 일, 부정하고 싶은 일들이 있을 때 불편함과 거북함으로 그 일을 받아 드리지 못하는 것은 누구나 예외 없는 본능적 반응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현상이 다가올 때,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나, 어색하고 싫은 대화가 다가오면 거부하고 불편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적 반응입니다. 배타적 경계선이 침범 당하는 느낌을 갖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계선이 짙을수록 내가 독방에 갇히게 되며, 고정된 틀 때문에 수용하지 못하는 자아 중심적 집착에 의한 고립된 삶을 자신 스스로가 만듭니다. 그래서 외롭게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 자아가 강하다는 것은 이미 정신의학적 임상에서 밝혀진 사실입니다.   노출의 두려움, 거절의 두려움, 그리고 상처받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인간관계에 방어막을 쳐서 가면을 쓰고 본 모습의 자신을 감추면, 자신이 모르는 역기능의 행동으로 인간관계가 풍성하지 못하고 정서적 장애에 시달리고 다른 사람을 받아 드리지 못합니다.   받아드림이라는 수용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먼저 용기 있는 자신의 내면을 의도적으로 노출해야 합니다. 부끄러워서, 거절당할까봐서 드러내지 못하면, 사탄의 계략에 말려들어 평생 경직된 경계선의 담을 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합니다.   누구나 실수가 있고, 실패가 있습니다. 깨어지고 부서지고 상처투성인 것이 인간인데, 잘난 척, 아무 일 없는 척, 마냥 좋은 척 하는 것이 오히려 우스운 일입니다. 사람은 실수와 실패의 이야기를 드러내면서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단단해집니다.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수용력은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성도의 이해력은 성령 안에서 긍정의 해석입니다. 용기 있게 실수와 실패를 드러내면, 사탄이 지어놓은 마음속에 거짓의 집은 깨어지고 사라집니다. 감추는 것이 많으면 허세를 부리고 과장하는 언행으로 오히려 부정적인 성향만 키웁니다.   목장에서 다른 사람을 있는 그 모습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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