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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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고통 중에 맞는 고난주간은 축복입니다.

이번 주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고난 받으신 사랑을 기억하는 고난 주간입니다. 고난이 없었던 평소보다 현재 우리가 겪는 환난과 고통 중에 고난주간을 맞이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고 축복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에 고통이 있어서 두려워하지만, 고난을 지나고 보면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영적 신비가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평안할 때는 우리 자신에 대한 내면이 잘 보이지 않지만, 고난이 있을 때 성령님의 위로로 내면을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을 싫어합니다. 고난은 고통이고 아픔이고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무탈한 것이 좋고, 편안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필 때는 고통이 있고, 열매를 맺을 때도 인간이 모르는 고통이 있다고 식물학자들은 말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지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하시고 고난을 받아 드렸습니다. 고난 속에 고통과 함께 영광이 담겨져 있는 것을 아셨기에, 고난이 변장된 축복임을 아셨기에 담담히 받아드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없었다면 우리의 치유는 없고, 구원도 없고 영생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아 죽으심으로 저주는 축복으로, 사망은 영생으로, 질병은 건강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수치는 영광이 되었고, 가난은 풍요로움이 된 것이며, 천국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삶은 고난입니다. 세상과 반대방향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십자가를 연습하고 훈련받는 여정입니다. 고난 받은 자리에 주님이 함께 계시고, 위로해 주시고, 세상이 느낄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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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관계이기 때문에 예배당 공예배가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은 나와 예수님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이 공동체로 영원한 사랑의 관계로 계시듯이 우리는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지, 꼭 교회에 나가야 합니까?’, ‘혼자서 예배드리면 되지 꼭 예배당에 나가서 예배 드려야 합니까?’, ‘예배만 잘 드리면 되지 꼭 목장에 참석해야 합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교회가 관계라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크리스천은 반드시 다른 성도들과도 관계를 맺는 것이 정상입니다. 혼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나와 예수님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로 불렀습니다. 우리는 관계를 맺도록 새롭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신앙은 관계 안에서만 자라며, 영적성장에는 영적 가족의 지원이 상호간에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공동체를 벗어나 자기를 스스로 고립시키는 사람은 정말 위험한 것입니다. 혼자 성경 내용을 많이 알고, 올바른 교리를 숙지하고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할 때, 협력하는 법, 사랑하는 법, 희생하는 법, 용서하는 법을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전혀 삶으로 배우지 못해 결국은 영적 장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닮는 것은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 맺음을 통해 자아가 점점 깎여 성결과 거룩함이 되는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당의 공예배는 단순한 주일성수라는 종교의식이 아닙니다. 함께하는 친교도 사실은 예배입니다. 공동체가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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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다가올 미래가 좀 일찍 왔을 뿐입니다.

갑자기 이런 일들이 닥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미리 말씀해 놓고 계속 경고해 왔습니다. 전염병과 천재지변 등 환란과 박해는 마지막 때 나타나는 징조 중에 포함되는데, 앞으로 지금보다 더 어려운 때가 올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때는 기다림을 훈련 받을 때입니다. 일상생활에 모든 부분이 ‘멈춤’ 이라는 빨간 신호등에 걸려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때가 되면 다시 노란색 불이 들어오고, 마침내 파란색 불이 들어 와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쉽게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있다는 이유로 신중함 없이 지금의 상태를 무시하고 행동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질병에 조심해야 하고, 사고에 조심해야 하고, 인간관계에 조심해야 하는 것이 보편적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영혼이 구원을 받았지만, 복잡한 삶의 문제나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으로부터 자유케 된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과학자들도 잘 모르는 바이러스에 대해 믿음이 있다고 자유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변화를 받아 드리면서 적응하며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당연히 근거 없는 유언비어는 귀담아 들을 필요 없지만, 전문가들과 행정 결정권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일이 지구촌 어느 한 곳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라는 점을 볼 때, 극복과 퇴치를 위해 제한하는 국가의 권고에 교회도 협력과 협조를 해야 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 폰을 사용하고 있는 첨단의 시대이지만, 예배와 헌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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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오셔서 귀한 일 하시고 잘 가셨습니다.

지난 화요일 제가 원로목사님 심방을 아내와 함께 했습니다. 준비한 화사한 난과 작은 쿠키 한 봉지를 들고, ‘목사님’ 하고 부르며 방 안으로 들어갔는데, 계시지 않았습니다. 간호사에게 물어 보니 정기검진을 위해 병원에 가셨다고 해서, 병원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목사님은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고 계셨고, 호흡이 좀 불편하고 다른데 아픈 곳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속히 회복되어 퇴원하도록 함께 기도를 하고, 안경 벗겨서 잘 닦아 드리고 내일 다시 오겠다고 말씀 드리고 돌아 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염려하지 않았는데, 다음 날 병원에 심방을 가보니 응급실에서 입원실로 올라가 계셨습니다. 상태가 어떤지 여쭈어 보니,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속히 일어나시라고 하니, 저에게 마지막 하신 말씀은, ‘감사합니다. 짐이 되어 미안합니다.’ 하시며 저의 손을 잡고 흔들어 주셨습니다. 하루만 입원하시고 퇴원하셔서 양로원으로 돌아오실 것 같았는데, 목요일 새벽에 주님의 부르심으로 영원한 안식처인 낙원으로 가셨습니다. 원로목사님은 지난 2주 전까지 양로원에서 말씀을 전하며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가끔 제가 아내와 심방 가서 예배에 참석할 때가 있었는데, 찬송도 두 세 장 부르시고, 말씀을 전하실 때는 성경 본문을 잘 요약하셔서 힘 있게 전하셨습니다. 예배 후에 제가 ‘요즘 성경 어디 읽으시냐’고 물어 보면, 정확히 어느 본문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말씀 사랑하시고, 기도하시는 목사님이신 것을 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항상 저에게 격려와 칭찬과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시는 말씀에 진심이 담겨 있었고, 당신께서 하루를 시작할 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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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결국에는 하나님의 선을 위해 사용 될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신학적 이해, 상황 윤리, 신앙적 결단 등에 대한 여러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시점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결국 이 일들이 하나님의 선을 위해 사용 될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신실함이 근거입니다. 질병과 사건사고가 모두 하나님의 뜻이고 섭리와 주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 질 수 없다(마10:29)는 것을 전제 할 때, 인간의 교만과 거만과 오만에 대한 영적 재앙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때는 자제하고 절제하고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필요 이상의 출입을 삼가고, 급하지 않는 만남의 약속도 신중하게 하고, 감기 몸살이 있을 때는 스스로 자가 격리하는 조심성을 보이는 것이 본인과 가족과 공동체를 위한 지혜일 것입니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인간의 교만과 약함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못 고칠 병이 없고, 생명의 신비도 다 알아낸 것처럼 다른 생명체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장담하던 인간이 작은 전염병 하나를 막을 수 없어서 속수무책인 것을 보면, 성공지상주의, 과학만능주의, 탐욕과 죄가 만들어 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에서 선을 만들어내시고, 어떤 식으로든 그 잘못된 상황을 반전시키시고, 복음에 유익하게 사용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이비 이단을 드러내서 소멸시키든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목하고 단절하고 보복하는 세계가 다시 협력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하시든지,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도록 하십니다. 이미 결정하여 주일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비난하고 정죄해서도 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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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하게 몸이 아플 때 나타나는 현상과 가져야 할 자세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정을 겪게 되고, 가끔은 원치 않는 문제와 사건으로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른 사람이 느낄 수 없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 중에 원인과 이유를 막론하고 극심하게 몸이 아플 때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과 잊지 말아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플 때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은 수동태 현상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포기현상이 나타납니다. 약을 먹는 것과 수술을 받는 것 모두가 다 수동태 현상입니다. 약을 통하여 수술을 통하여 치유되기를 바라고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 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합니다. 이때 철저하게 나의 무능력과 무력함을 느끼게 되고,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다음 단계는 점점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합니다. 이 두려움과 불안은, 고통 외에 그 어떤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게 되고, 나의 영혼과 나의 존재에 집중하게 합니다. 철저히 고립과 격리되는 정서적 고통이 시작될 때, 혹시 지금이 끝이라고 생각 될 때, 내가 믿는 하나님 앞에서 지금까지 살아 온 신앙여정과 삶의 여정의 진위여부를 냉정하게 점검하게 됩니다. 이때 회개와 동시에 은혜에 대한 감사로 나타납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묵상과 기도내용과 가족과 주님을 위한 사역에 대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영혼 가운데 생생하게 펼쳐질 때 성령님의 위로와 책망이 동시에 임하고, 회복되는 기회가 주어지면, 꼭 하고 싶은 일이나 마무리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준비하는 마음과 다짐하는 각오가 세워집니다. 아무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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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배우고 오겠습니다.

며칠 전 새벽기도 시간에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번 짐바브웨 선교를 위해 여러 가지 준비기도를 하는 중에 주님께서 저에게 들려주신 선명한 내적 음성은, ‘가서 겸손히 배워라’였습니다. 처음에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의아했는데, 기도를 조금씩 더 깊이 하다 보니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선교는 외적으로는 도우러 가지만, 내적으로는 많은 것을 배우러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성령께서 깨우쳐 주셨습니다. 열악한 환경 가운데 사는 아프리카 땅의 형제와 자매들의 삶을 보고 팔복의 심령을 느끼고, 최첨단의 과학과 경제대국에서 사는 미국이 어쩌면 영적으로 위험한 안전지대가 아닌지, 겸손히 깨닫고 진실한 섬김과 나눔을 하고 오기를 원합니다. 신앙생활의 편함에 대한 익숙함의 횡포는 천국에 대한 간절함과 은혜에 대한 사모함과 죄에 대한 애통함을 사라지게 하고, 결코 다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의 요구로 시간과 물질과 몸을 낭비하면서, 정작 그 사실을 모르고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결과가 어떠한지, 성령의 인도하심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낮은 마음으로 진심으로 섬기는 자세와 태도를 훈련 받고, 비록 풍요와 번영이 없어도 마음은 천국과 연결되어 있는 순전한 믿음을 보고 은혜를 받고 싶습니다. 지난주까지 선교를 위한 몇 번의 기도모임에서 팀 나눔을 통해, 우리 안에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 무엇이며, 매일 매일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교회를 섬겨야 할 것인지,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배우고 깨닫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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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환경이 가장 완벽한 환경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좋은 환경, 완벽한 환경은 이 세상에 그 어디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지만, 자신의 환경과 마찰이 있는 한 절대로 일이 잘 풀릴 수 없습니다. 내가 처한 환경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이며, 나의 영혼은 그 환경과 맞서 싸우고 극복할 때 강해지는 유익이 있습니다. 환경이 좋으면 영적으로 유약해지고, 교만으로 정욕의 공격에 무너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가정과 지역과 어떤 위치와 재산과 사람들과 주변 환경과 갈등하며 불평하면, 인생의 힘은 아무런 목적 없이 낭비됩니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해하며 적응하고자 할 때 단련된 영혼의 힘이 나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게 됩니다. 내 마음에 완벽하게 맞는 환경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환경이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환경을 만들어 냅니다. 부족한 환경에서 가치 있는 삶을 이루어냈다면, 그 환경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완벽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편함과 불만은 원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은 결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헛된 욕망과 욕심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고, 좋은 환경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려운 여건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불편한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이 거짓과 걱정과 불만족과 이기심을 버리는 영적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지 않는 한, 지금보다 더 좋은 미래는 오지 않습니다. 늘 불편한 현재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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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마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 교회 예배당 안에는 제가 처음 앉았던 자리가 있습니다. 담임목사가 된 후 지금까지 처음 앉았던 그 자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 혼자 그 자리를 조용히 앉을 때 주님이 주시는 말씀은, 항상 처음 마음을 잃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주님 안에서 저의 처음 마음은, 감사하겠다는 마음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성도님들을 행복하게 하는 목사가 되어야 하겠다는 결심이었는데, 그 처음 마음 하나를 지키기가 쉽지 않은 것을 항상 경험하면서, 부족하고 미숙한 부분을 성찰할 때가 많습니다. 목사가 너무 열정이 강하면 성도님들이 힘들고, 너무 열정이 약하면 성도님들이 무감각해지기 때문에 때때로 주님과 성도님들 앞에서 교만과 자책의 위험한 신호를 감지하고, 처음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익숙해진 목회 습관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신앙생활 연수와 사역의 경력이 오래되면, 스스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뭔가 관록이 붙고, 기도하는 것, 말씀 읽는 것, 주일 예배 드리는 것이 습관에 따라 익숙해져 있으면, 처음 어떻게 순수하게 기도하고, 말씀 읽고, 예배 드렸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어떤 것에 대해서 뚜렷한 내 주관과 방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이래야 한다는 나의 주관과 방식이 있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목사나 성도에 대해서도 분명한 나의 생각이 있다면, 어쩌면 오늘 내가 하나님을 경험해야하는 것을 그것이 막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스스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이미 성장이 멈추어진 것입니다. 좋은 습관도 오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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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이 내게 있다고 생각해야 인간관계 문제가 풀립니다.

삶에서 인간관계가 꼬일 때 그보다 더 힘든 것이 없습니다. 그때는 문제가 생기는 원인을 특정한 사람에게서 찾는 습관을 경계해야 합니다. 본능적으로 내가 아닌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다고 여길 때 핑계와 변명거리를 찾는 것이 바로 본능을 따르는 육의 사람입니다. 주변에 문제가 생길 때, 원인의 대부분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닌지 먼저 고민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그에게’ 어떻게 반응하며 방어하고 생각하는지를 자세히 관찰하는 과정에서 틀어진 문제의 본질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나에게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으면, 문제를 야기한 그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 보존하기 어려우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찾기 어렵습니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발생하면, 복잡하게 헝클어진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생각을 해야 쉽게 풀리게 됩니다. 관계의 불편함이나 단절의 어색함은 나를 관찰하며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를 만들고, ‘모든 문제는 나에게서 비롯되었다. 다른 사람을 탓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라고 여기는 것이 영적인 사람이고, 문제에 대해 책임지려는 태도가 평안과 자유의 전제 조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잘못만 계속 묵상하고, 자신의 책임은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옳지 않다’는 이기적 이원론의 자기애에 빠져 극단적 고집만을 주장하니 결코 밝은 미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발생한 불편한 과거보다 원만한 미래를 위해 나를 조신하게 낮추어 진심으로 상대방을 존중할 때 문제의 실마리는 풀립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나도 상처를 받고, 내가 남을 안 좋게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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