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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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교회는 위기가 없습니다.

소위 신앙이 좀 깊다는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교회의 위기에 대해 말하면서 앞으로 절망적인 교회의 미래를 내다봅니다. 기독교인들이 줄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걱정합니다. 유럽의 교회가 한 때 융성했지만, 지금은 그 예배당에 결혼식이나 관광객들로 붐비고, 심지어 술집이 예배당 건물을 사서 개조해서 장사를 한다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미국이나 한국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에 위기가 올 것이라는 전망을 합니다. 통계자료를 인용하기도 합니다. 사실 걱정입니다. 교회에 주일학교나 청소년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회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으로 전도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교회를 한 번도 다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나 타종교를 믿어 온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는 일이 아주 드문 현상입니다. 교회가 위기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총체적으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 부흥하는 교회가 있고, 지금도 성공적인 교회를 세워가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유럽에서 교회가 성장하는 곳이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종교학 교수 하비 콕스는 1965년에 [세속도시]라는 책을 저술하면서, 세속사회에는 결국 종교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2010년에 [종교의 미래]라는 책을 다시 쓰면서 자신의 예상이 틀렸고, 종교는 놀랍게 부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루이 14세 이후 프랑스에서는 기독교가 사라졌다고 했지만, 요즘 프랑스에는 매주 3000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가 생겼다고 합니다. 남미도 아프리카도, 중앙아시아도 부흥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사람들은 교회를 떠날 것이고, 교회는 문을 닫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고, 오히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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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달콤함의 결핍은 당연함

우리는 이성을 넘어선 감정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맞고 틀린 것을 사실관계가 아니라 감정이 기준이 되어 결정합니다. 느끼는 감정에 맞으면 틀린 것도 옳고, 감정에 맞지 않으면 맞는 것도 틀린 것이 되는 세상적 인식의 조류에 휩쓸려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주관적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달콤함이나 기쁨이라는 감정적 결핍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달콤함이라는 감정의 기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에 익숙해져서 거짓을 옳음으로 인정하는 과오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냥 감정적으로 좋아야만 한다면 아픔과 슬픔 속에서는 진리를 따라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성품은 사랑이 많고 관대한 모습도 있지만, 어둠과 결핍과 황폐함 가운데 거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쁨을 주시고 위로도 주시지만, 아픔을 허용하시고,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메마른 감정 속에서 몸부림치는 영혼을 가까이 만나 주십니다.   감정의 표현인 기분은 일시적이고 더 강한 감정 상태를 요구합니다. 때문에 기분대로 무슨 일을 시작하고, 기분대로 사람을 대하면 나를 기쁘게 하는 이기심과 자만심만 살찌우게 됩니다. 때때로 좋으신 하나님을 내가 그리워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기쁨만을 원하는 나의 감정과 자아라는 것을 모르고 속을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한 자는 기분 좋은 감정의 상태는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상태가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감정적 달콤함의 결핍은 사모하는 영을 위한 말씀의 흡착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의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감정만을 느끼기 원하는 자의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아주 사소한 일에 쉽게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은 바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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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가지 기도제목으로 기도하면서

거의 한 달 동안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성도님들이 적어 낸 7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새벽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거의 기도제목과 성도님들의 얼굴이 연결되는 단계입니다. 기도제목 중에 진지하고 구체적인 신앙상태를 위한 기도내용은, 제가 개인적으로 매일 새벽에 씨름하는 기도내용과 비슷해서 공감이 되고, 당사자의 이름을 부르며 그 기도제목으로 중보 할 때 성령의 임재를 느끼고 저의 영혼에 큰 울림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를 죽이고 어떤 상황에도 말씀에 굳게 서서 감사함으로 주의 뜻에 순종하게 해 달라는 것과, 우리 교회를 말씀과 기도와 성령으로 무장시켜 하나님의 일에 친히 사용하여 달라는 것과,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나님 앞에서 거짓으로 나를 포장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도록 해 달라는 것과, 의지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과, 일이 잘못되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책임전가를 하지 않고 내 잘못이 더 큰 것을 알고 미움이 없게 해 달라는 것과, 직장에서 충성되고 정직한 청지기가 되어 일하는 시간을 예배로 올려 드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과, 영혼구원을 위해 VIP 몇 명을 섬기고 인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들입니다. 저는 이러한 기도제목으로 기도할 때 우리 교회도 장목사와 같은 영성과 꿈이 있음을 느끼면서, 잔잔한 감동과 기쁨이 있어서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치는 우리의 기도제목은 어느 것이든 좋습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모두 기도제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제목은, 먼저 하나님의 뜻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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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의 위험

정신과 용어 중에 ‘조해리 창’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인간관계에는 4가지 창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창, 나는 알고 너는 모르는 창, 나는 모르고 너는 아는 창,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창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안정된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 4가지 영역을 인정하고 상호 경계를 지킬 것을 제시합니다. 이 창을 함부로 넘어서지 말고 서로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친밀한 사이에서도 일정하게 지켜야 할 기본적 경계가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른 바운더리가 있기 때문에, 무례하게 그 영역을 침범하면 불편한 감정으로 인해 갈등이 유발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서로의 기본적 경계를 인정해 주고, 가능한 한 그 경계를 내 마음대로 넘나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중하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 그를 변화시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공동의 선을 이루기 위해, 뜻이 좋기 때문에, 본인에게 유익이 됨으로 억지로 그에게 강요하는 주장은 결정의 주도권을 내가 갖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사람을 ‘프로크루스테스’와 같다고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악당입니다. 그는 아름다운 강가에 살면서 길을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집으로 초대해 놓고 쇠로 만든 자신의 침대에 눕히고 여행자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여행자의 다리를 잡아당겨 침대에 맞추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침대 크기에 맞도록 다리를 잘라 버리는 일을 했습니다.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강요하거나 고치려 하여 고통을 주는 사람을 ‘프로크루스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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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은 생명을 소생케 하는 온도

교회는 따뜻해야 합니다. 교회로 모여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사랑은 품음입니다. 품는다는 것은 따뜻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차가우면 생명은 자라지 않습니다. 거부와 거절이 느껴지는 냉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내가 상대방을 품을 때, 그 따뜻함 때문에 내가 성장하고, 내가 변화되고, 내가 새로워집니다. 따뜻함은 혼돈을 통과해야 합니다. 혼돈 없이 따뜻함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혼돈은 혼란과 공허와 흑암과 아픔과 어색함과 불편함입니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 따뜻함이 생기고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창조됩니다. 새로운 발명품과 작품과 어떤 예술과 특출한 인물 그리고 획기적인 어떤 역사는 등장하기 전에 꼭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공허와 냉랭함 혼란을 통과한 다음에 마침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불편하고 어색하고, 혼란스럽고 냉기가 느껴져도 어두운 부분까지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저절로 되는 차원이 아닙니다. 혼돈과 공허와 시련과 아픔을 품고 사랑해 낼 때, 성령님께서 그 과정 가운데 역사하셔서,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하시고, 성숙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내십니다. 알고는 있지만, 우리는 혼돈과 공허와 시련과 아픔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생명의 관계는 반드시 대가를 치루고 난 뒤에 형성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은 “거룩한 혼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창조의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와 어떤 과업의 열매는 반드시 이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연주하기 전에 악기의 음을 조율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때 조율하는 소리는 아름답지 못합니다.그래도 그 과정을 좋아해야 나중에 아름다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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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독소는 냉소주의

하나님께 대한 기대감이 없는 것은 냉소주의의 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냉소주의는 불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대를 포기한 채 신앙생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에 냉소적 사고는 불신에서 비롯됩니다. 때때로 냉소주의는 지혜로 가장하지만, 사실은 지혜와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냉소주의는 항상 반대합니다. 거절과 거부의 경험이 많을수록 냉소적 사고에 붙잡힐 수 있습니다. 냉소주의는 모든 기대를 포기한 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런 설렘 없이 차가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쉬운 말로 표현하면 모든 것을 다 시도해 보았는데 별 볼 일 없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봉사해 보았는데 별로 득이 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정해 주는 사람도 별로 없고, 인정받는 것도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나를 위해 살아야 하겠다는 이기주의에 빠진 상태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너무 속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가 있어도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고, 보상해 주시는 분이시고, 복 주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무슨 일을 하든지 기쁨과 감사함을 의지적으로 표현하고 나타내야 합니다. 그래야 냉소적 사고가 물러갑니다. 해 보고 안 되면 또 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의지와 힘과 지혜는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믿고, 냉소적 사고를 벗어나야 합니다. 어떤 아픔의 과거의 사연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과거에서 자신을 풀어놓지 않고, 과거의 의식에 붙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은,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요11:44)고 하셨습니다. 죽음과 과거로부터 풀어 주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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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기도와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

01.06.2019 제가 일주일 내내 새벽기도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목사니까 하는 것이고,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고 저에게 유익이 되고, 영적 감각을 유지시키기 위함입니다. 새벽기도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Yes, No로 말할 수 없겠지만, 저는 새벽기도 시간에 저의 약하고 악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성찰을 위해 매일 새벽에 기도하는 것을 쉴 수 없습니다. 왜 꼭 새벽에 예배당에 나와서 기도해야 하는지, 집에서 하면 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은 마음의 동기와 영적 습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극단적인 답을 내려 일반화 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매일 새벽에 성전에 나와 기도하는 것이 성경적이고, 영적생활에 분명히 유익이 됩니다. 저는 기도를 쉬면, 금방 욕망에 의해 말이 달라지고, 피곤한 것을 느낍니다. 기도가 잘 되지 않아도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면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초자연적인 힘을 공급 받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피곤해도 정해 진 시간에 교회를 나옵니다. 목회를 하면서 목사의 타락은 필요에서 시작된 혜택에 익숙해지면서,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기대에 못 미칠 때는 불평하고, 더 큰 혜택까지 요구하게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작은 욕심을 채우거나, 작은 거짓말을 하거나, 작은 부정을 저질렀을 때 처음에는 약간의 가책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면 죄라고 느껴지지 않게 되는 ‘익숙함’이 타락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는 아무리 바쁘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놓치면, 영적상태에 반드시 탈이 납니다. 그래서 단순히 새벽기도를 인도하는 것을 개인 기도로 대치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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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마음 다시 품기

12.30.18 한 해를 뒤돌아보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난 1년 목회 일기를 살펴보니 순간마다 성령님께서 개입하셔서, 하고 싶지만 멈추게 하시고, 멈추고 싶지만 하게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영성이 존중과 협력의 문화로 자리매김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도님들이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333 기도를 해 주시고, 매일 새벽자리에 기도로 씨름한 기도의 용사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는데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지나간 과거를 떠나보내고,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할 때입니다. 이루지 못한 아쉬움도 접고 깔끔히 마무리해야 합니다. 안 된 것도 없고, 다 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인생에 있어서 과거의 성공과 실패는 해석의 문제입니다. 저는 부족한 것이 많은 목사입니다. 실력도 능력도 재능도 모두 부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저의 능력이 되어 주기를 소원하며,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 교회에서 처음 부임했을 때 먹었던 처음 마음을 다시 점검하며 품고 다짐하고자 합니다. 그 처음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때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겨자씨와 같은 작은 소망이 서서히 자라고, 누룩처럼 서서히 퍼져서 튼실한 열매를 드러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마음은 낮은 마음 겸손함입니다. 교만하지 않고 배우는 처음 마음으로 섬기기를 원합니다. 한 해 동안 성도님들을 사랑하는 목자이기를 소원했지만, 사랑 받기를 더 원했습니다. 칭찬에 초연하고 저의 약함을 자랑하려 했지만, 자랑과 허세의 방어기제 안에서 안정감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만하면 잘 하고 있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절박하고 절실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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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기로 작정하는 의지적 사랑

하나님이 나에 대해 사랑을 느끼신다는 확신이 있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기로 작정하고 의지적으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의 부족함과 실패와 죄에만 집착하고 계시는 것으로 느끼면, 하나님 앞에서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고, 불편한 감정으로 영혼이 두려움과 불안에 붙들립니다. 그러면 금방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해 비판과 정죄와 판단을 하는 자세와 태도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함을 저는 영적현상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내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으로 인해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 현상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사랑을 따뜻한 감정, 좋아하는 느낌, 나에게 잘해 주니까 고마워하는 마음의 표현으로 나타냅니다. 그런데 예수를 잘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은 의지적 결단이지 결코 감정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오는 의지적 결단이며, 이 사랑은 책임을 동반하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에게서 어떤 조건을 찾지 않습니다. 찾아봐도 부패한 본성 밖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면 의롭다 인정해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후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실수 대해 증오하고,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라, 다가와 함께 하시며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은 의지적으로 결정하는 사랑입니다. 저를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희생시키신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좋아하시기로 결정하시고, 제가 무슨 실수를 해도 보혈로 저를 덮어주시고, 저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저도 하나님을 의지적으로 좋아하고 사랑하기로 작정할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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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친교와 헌화(강단 꽃 드림)에 관하여

올 해 친교 음식을 준비해 주시고, 주일 강단에 꽃을 단장해 주신 분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기쁨이 마음 가운데 차고 넘치고 은혜의 축복이 임하시를 축원합니다. 저는 우리가 영적 가족과 식구이기 때문에, 주일 친교가 예배 가운데 속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예배는 친교까지였습니다. 부모님 생일이나, 자신의 결혼기념일이나, 자녀들 기념일 혹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날을 기념하면서 교회에서 친교 음식으로 감사 표현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 자세입니다. 자원자가 없으면 권사님들, 집사님들이 친교 음식을 힘들게 계속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니 꼭 나도 한 번 섬길 수 있다는 태도로 2019년에 자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기쁨과 특권을 갖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가 계속 희생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서로 짐을 나누어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사랑의 법입니다. 사랑은 책임이며 경쟁적으로 의지적으로 해 내는 것입니다. 저는 올해 우리 모든 가정이 다 한두 번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작정하고 한 번 해 봐야 하나님 은혜의 맛을 알게 됩니다. 섬김이 존중이며, 자원이 협력이며 감사의 표현입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분들이 하겠지! 하는 마음은 완고함이며, 영적 게으름입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의 자세가 나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이끌어 올 수 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십시오. 누군가 하겠지! 하고 대접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나도 1년에 몇 번 섬기고 봉사하겠다는 작정을 하면, 하나님은 그 선한 일에 대해 예상 밖에 후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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