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장목사 조금씩 팔불출이 되어갑니다.

이제 장목사 조금씩 팔불출이 되어갑니다.

요즘 제가 새벽기도를 나오면, 점심때까지 교회 사무실에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합니다. 작정하고 읽을 책을 골라 읽고, 중요한 부분을 요약하다보면 시간이 어느새 점심 때가 되는데, 아내에게서 점심 식사를 하러 오라는 전화가 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들을 때, 무슨 큰일을 한 것처럼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끼며 수고한 표정을 잘 보존해서, 집으로 가서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는데, 음식 준비로 수고한 아내 앞에서 은근히 ‘나도 열심히 잘 하고 왔다’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지지난 주 어느 날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점심을 먹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늘 몸 컨디션이 좀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점심은 알아서 해결할 테니 좀 쉬라고 했더니, 다른 말없이 즉시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점심을 챙겨 주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을 고맙게 생각하는 아내의 말에, 저는 전에 느끼지 못한 애잔함을 느꼈습니다. 교회일이든, 집안일이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든, 무슨 일이든지 용감하게 최선을 다해 몸을 아끼지 않고 척척 잘해 내는 아내였는데, 이제는 몸이 따라가지 않는 피곤함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참 무심한 남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며칠 전에 점심 식탁에서 아내가 무심코 웃으면서 내뱉은 한마디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나는 목사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이고, 사생활이 없는 교회 사모라’고 한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몇 달 전에 작은 복숭아 박스를 하나 사 들고 오면서 하는 말이, ‘오늘 내가 나에게, 너 이 정도는 먹을 자격이 있다며 칭찬하고 용기를 내서 사 왔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제 아내는 미국에 와서 단 한 번도 교회 밖에서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교회 밖에 모르는 전형적이고 정통적인(?) 목사사모입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교회의 사례로 지금껏 열심히 잘 살아 왔습니다. 돈에 대한 계산이 분명한 성격이라, 공과 사는 매우 정확하게 따져가며 최선을 다하고, 불평불만하는 말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아내가 입고 다니는 옷은 거의 다 누군가가 입었던 옷입니다. 교회의 먹거리나 생활용품을 살 때는 가격대비 가성비가 높은 쪽을 찾아다니며 구입하고 교회 일이라면 양심에 어긋남 없이 최선을 다합니다. 제 아내는 무엇보다 기도하는 시간을 참 기쁘게 여깁니다. 기도하기 때문인지, 매주 제가 설교할 때마다 한 가지씩 꼭 은혜를 받는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이 조금씩 물러가고, 날이 풀리며 연두색 수양버들 가지가 바람에 조신하게 흔들리는 봄날 탓인지, 지금껏 살아 온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아내에게 크게 미안함이 느껴졌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귀담아 듣지 않았던 아내의 말들이 또렷하게 생각이 나는 것을 보니, 이제야 제가 철이 들어 조금씩 팔불출이 되어가나 봅니다. 우리 곁에 함께 있을 때 서로 잘 하십시다. (장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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