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은 생명을 소생케 하는 온도

따뜻함은 생명을 소생케 하는 온도

교회는 따뜻해야 합니다. 교회로 모여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사랑은 품음입니다. 품는다는 것은 따뜻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차가우면 생명은 자라지 않습니다. 거부와 거절이 느껴지는 냉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내가 상대방을 품을 때, 그 따뜻함 때문에 내가 성장하고, 내가 변화되고, 내가 새로워집니다. 따뜻함은 혼돈을 통과해야 합니다. 혼돈 없이 따뜻함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혼돈은 혼란과 공허와 흑암과 아픔과 어색함과 불편함입니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 따뜻함이 생기고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창조됩니다.

 

새로운 발명품과 작품과 어떤 예술과 특출한 인물 그리고 획기적인 어떤 역사는 등장하기 전에 꼭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공허와 냉랭함 혼란을 통과한 다음에 마침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불편하고 어색하고, 혼란스럽고 냉기가 느껴져도 어두운 부분까지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저절로 되는 차원이 아닙니다. 혼돈과 공허와 시련과 아픔을 품고 사랑해 낼 때, 성령님께서 그 과정 가운데 역사하셔서,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하시고, 성숙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내십니다.

 

알고는 있지만, 우리는 혼돈과 공허와 시련과 아픔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생명의 관계는 반드시 대가를 치루고 난 뒤에 형성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창세기 12절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은 거룩한 혼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창조의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와 어떤 과업의 열매는 반드시 이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연주하기 전에 악기의 음을 조율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때 조율하는 소리는 아름답지 못합니다.그래도 그 과정을 좋아해야 나중에 아름다운 음악을 즐길 수 있기에, 견디며 참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생활을 하기 때문에 때때로 불편하고 어색합니다. 영적생활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인마다 성향 성품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흡족하고 완전한 기대감 충족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도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의지의 자세와 태도를 보일 때 성령님은 역사하십니다.

 

교회에서 신앙훈련이나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될 것으로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좋아하려고 적극적으로 관계맺음을 하고 때때로 혼돈과 공허와 불편이 있어도, 실망하지 않고 낙관적인 긍정의식으로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따뜻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리하면 머잖아 아름답고 희망찬 미래와 생명의 소생을 보게 될 것입니다. 따뜻함은 여유이고 넉넉함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품고 기도하고 축복하는 태도를 유지하면 생명을 풍성케 하는 일은 우리가 아닌 주님이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장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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